질마재로 돌아가다 - [67] 어느 신라승이 말하기를 어느 신라승이 말하기를 - 서정주 세상이 시끄러워 절간으로 들어갔더니 절간에선 또 나더러 강의를 하라고 한다. 절간도 시끄러워 깊은 굴로 들어 갔더니 주린 범이 찾아와 앉아 먹어 보자고 한다. 그래 시방 내게 있는 건 아주 고요하려는 소원과, 내가 흔들리는 날은 당할 호식虎食과, .. ▒▒▒마음의산책 ▒/미당 서정주 2013.09.20
질마재로 돌아가다 - [66] 내 데이트 시간 내 데이트 시간 - 서정주 내 데이트 시간은 인제는 순수히 부는 바람에 동으로 서으로 굽어 나부끼는 가랑나무의 가랑잎이로다. 그대 집으로 가는 길 도중에 섰는 갈대 그 갈대 위의 구름하고도 깨끗이 하직해 버린 내 데이트 시간은 이승과 저승 사이 그 갈대의 기념으로 내가 세운 절간.. ▒▒▒마음의산책 ▒/미당 서정주 2013.09.19
질마재로 돌아가다 - [65] 꽃 꽃 - 서정주 꽃아, 저 거지 고아들이 달달달 떨다 간 원혼을 헤치고, 그보다도 더 으시시한 그 사이의 거간꾼 왕초며 건달이며 꼭두각시들의 원혼의 넝마들을 헤치고, 새로 생긴 애기의 누더기 강보襁褓 옆에 첫국밥 미역국 내음새 속에 피어나는 꽃아, 쏟아져 내리는 기총소사機銃掃射 .. ▒▒▒마음의산책 ▒/미당 서정주 2013.09.18
질마재로 돌아가다 - [64] 내 아내 내 아내 - 서정주 나 바람 나지 말라고 아내가 새벽마다 장독대에 떠 놓은 삼천 사발의 냉숫물. 내 남루襤樓와 피리 옆에서 삼천 사발의 냉수 냄새로 항시 숨쉬는 그 숨결 소리. 그녀 먼저 숨을 거둬 떠날 때에는 그 숨결 달래서 내 피리에 담고, 내 먼저 하늘로 올라가는 날이면 내 숨은 그.. ▒▒▒마음의산책 ▒/미당 서정주 2013.09.17
질마재로 돌아가다 - [63] 무궁화 같은 내 아이야 무궁화 같은 내 아이야 - 서정주 손금 보니 너나 내나 서릿발에 기러깃길 갈 길 멀었다만 창피하게 춥다 하랴 아이야 춥거든 아버지 옥양목 두루마기 겨드랑이 밑 들어도 서고 이 천역살 다 풀릴 날까지 밤길이건 낮길이건 걸어가 보자. 보아라, 얼어붙은 겨울날에도 바다는 물을 뚫고 들.. ▒▒▒마음의산책 ▒/미당 서정주 2013.09.16
질마재로 돌아가다 - [62] 이런 나라를 아시나요 이런 나라를 아시나요 - 서정주 밤 산경보다도 산 속 중의 참선보다도 조용한 굼보다도 더 쓸쓸하고 고요한 사람만이 사는 나라를 아시나요? 말은 오히려 접어서 놓아 둔 머언 나들이옷으로 옷걸이 속 횃대에 걸어만 놓고 지내는 그런 사람만이 사는 나라를 아시나요? 육체가 세계에서 제.. ▒▒▒마음의산책 ▒/미당 서정주 2013.09.15
질마재로 돌아가다 - [61] 서경敍景 서경敍景 - 서정주 달이 좋으니 나와 보라고 하여 아내한테 이끌리어 나가서 보니 두 마리에 동전 한 닢짜리 새의 무리를 두 다리 잘린 채 저리도 잘 날으는 연습은 언제부터 그리 잘 된 것인가. 인제는 이조 백자의 무늬의 새보다도 더 유창히 달의 한 켠을 썩 잘 날으고, 달의 다른 한 켠.. ▒▒▒마음의산책 ▒/미당 서정주 2013.09.14
질마재로 돌아가다 - [60] 방한암方漢岩 선사 방한암方漢岩 선사 - 서정주 난리 나 중들도 다 도망간 뒤에 노스님 홀로 남아 절 마루에 기대 앉다. 유월에서 사월이 왔을 때까지 뱃속을 비우고 마음을 비우고 마음을 비워선 강남江南으로 흘러보내고 죽은 채로 살아 비인 옹기 항아리같이 반듯이 앉다. 먼동이 트는 새벽을 담고 비인 .. ▒▒▒마음의산책 ▒/미당 서정주 2013.09.13
질마재로 돌아가다 - [59] 다시 비정의 산하에 다시 비정의 산하에 - 서정주 1945년 8월 15일 일본인의 종 노릇에서 풀리어 나던 때 흘린 눈물 질처거리던 예순 살짜리들은 인제는 거의 다 귀신 되어 어느 골목에서도 보이지 않고, 그날 미·소 양군 환영의 플래카드를 들고 서울역으로 몰려가던 이, 삼, 사십대 인제는 거의 늙어 낡은 파.. ▒▒▒마음의산책 ▒/미당 서정주 2013.09.12
질마재로 돌아가다 - [58] 범산梵山 선생 추도시 범산梵山 선생 추도시 - 서정부 당신과 동행을 하기라면 어느 가시덤불 돌무더기 영원을 가자 해도 피곤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참으로 좋으신 웃음. 항시 샘솟아나는 참으로 좋으신 웃음. 무슨 연꽃과 연꽃 사이 웃는 바람 마음의 고향에서 오시는지 그 웃음이 우리의 노독을 잊게 합니다.. ▒▒▒마음의산책 ▒/미당 서정주 2013.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