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산책 ▒/미당 서정주

질마재로 돌아가다 - [59] 다시 비정의 산하에

나무향(그린) 2013. 9. 12. 05:57

다시 비정의 산하에 - 서정주

 

1945년 8월 15일

일본인의 종 노릇에서 풀리어 나던 때

흘린 눈물 질처거리던 예순 살짜리들은

인제는 거의 다 귀신 되어

어느 골목에서도 보이지 않고,

그날 미·소 양군 환영의 플래카드를 들고

서울역으로 몰려가던 이, 삼, 사십대

인제는 거의 늙어

낡은 파나마를 머리에 얹고

파고다 공원에서 환갑을 맞이하고,

 

그날 어머니의 젖부리에 매어달려

해방이 무엇인 줄도 모르던 애기들

인제 자라서

무직無職과 플래카드와 파고다 공원과 귀신 노릇을 배우고

 

탈색과 표백은 아직도 덜 되었는가?

백의동포여.

 

평양 같은 언저리,

납치되어 산채로 빨랫줄에 말리어지는

기화氣化하는 수만 미이라의 소리 듣는다.

이 표백과 탈색은 언제쯤 끝나는가?

 

새로 나갈 길은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베트남뿐이다.

베트남뿐이다. (1966, 8, 15) .......................................p88-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