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아, 네 해일 그리며 살았었느니 - 서정주
천년을 짓누르면 망하는가 했더니,
천년을 코 박으면 막히는가 했더니
무슨 힘, 무슨 꼬투리로
이 생명, 이 핏줄기 이리도 오래 좋아했느뇨.
마늘이냐, 고추냐, 쑥 잎사귀냐.
우리의 숨결 속엔 뼈다귀 속엔
무엇이 들어서 아리게 하여
죽여도 다시 살아 일어서 왔느뇨.
산채로 입관되는 수없는 소녀들,
부둥켜안은 채 소살燒殺되는 청년 남녀로
우리는 수없는 산을 싸면서도
목숨보단 더 질기게 살아서 오고,
코에는 코뚫이, 목에 고삐 찬
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돌리면서도
마음과 울음으로는 너만 살았었느니
3·1아, 네 폭풍 해일만을 그녀 살았었느니.
3·1아.
천지와 역사 속에서는 제일 맵고도 쓴
3·1아.
죽은 모든 이 나라의 망령과
아직 생기지 않은 미래 영원의 우리 자손을
두루 살린 3·1아.
3·1절 오십 년을 맞이하는 오늘,
3·1아, 네 힘으로 다시 산
삼천만 겨레 여기 모여 고개 숙여
백두산서 내려오신 단군 할아버지와 함께
그 죽지 않는 매움에 젖어 있도다.
젖어서 있는 것만이 가장 큰 영광이로다. .............................P85-86
'▒▒▒마음의산책 ▒ > 미당 서정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질마재로 돌아가다 - [59] 다시 비정의 산하에 (0) | 2013.09.12 |
---|---|
질마재로 돌아가다 - [58] 범산梵山 선생 추도시 (0) | 2013.09.11 |
질마재로 돌아가다 - [56] 조국 (0) | 2013.09.09 |
질마재로 돌아가다 - [55] 나그네의 꽃다발 (0) | 2013.09.08 |
질마재로 돌아가다 - [54] 어느 가을날 (0) | 2013.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