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의 꽃다발 - 서정주
내 어느 해던가 적적하여 못 견디어서
나그네 되어 호올로 산골을 헤매다가
스스로워 꺽어 모은 한 웅큼의 꽃다발ㅡ
그 꽃다발을 나는
어느 이름 모를 길가의 아이에게 주었느니.
그 이름 모를 길가의 아이는
지금쯤은 얼마나 커서
제 적적해 따 모은 꽃다발을
또 어떤 아이에게 전해주고 있는가?
그리고 몇십 년 뒤
이 꽃다발의 선사는 또 한 다리를 건네서야
내가 못 본 도 어떤 아이에게 전해질 것인가?
그리하여
천 년이나 천오백 년이 지난 어느 날에도
비 오다가 개이는 산 변두리나
막막한 벌판의 해 어스름을
새 나그네의 손에는 여전히 꽃다발이 쥐이고
그걸 받을 아이는 오고 있을 것인가?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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