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산책 ▒/미당 서정주

질마재로 돌아가다 - [55] 나그네의 꽃다발

나무향(그린) 2013. 9. 8. 05:04

나그네의 꽃다발 - 서정주

 

내 어느 해던가 적적하여 못 견디어서

나그네 되어 호올로 산골을 헤매다가

스스로워 꺽어 모은 한 웅큼의 꽃다발ㅡ

그 꽃다발을 나는

어느 이름 모를 길가의 아이에게 주었느니.

 

그 이름 모를 길가의 아이는

지금쯤은 얼마나 커서

제 적적해 따 모은 꽃다발을

또 어떤 아이에게 전해주고 있는가?

 

그리고 몇십 년 뒤

이 꽃다발의 선사는 또 한 다리를 건네서야

내가 못 본 도 어떤 아이에게 전해질 것인가?

 

그리하여

천 년이나 천오백 년이 지난 어느 날에도

비 오다가 개이는 산 변두리나

 

막막한 벌판의 해 어스름을

새 나그네의 손에는 여전히 꽃다발이 쥐이고

그걸 받을 아이는 오고 있을 것인가? ...............................P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