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권무심재 123

슬픈것이 흘러가는 시간이다 - (21) 시메나 지나는 길에

시메나 지나는 길에 / 이형권 언제나 그립습니다. 사랑하는 일도 그리워하는 일도 서럽고 남루할 뿐 다시 돌아가지 못할 길을 나는 이렇게 떠돌아 흐릅니다. 바다는 떠돌이처럼 말을 잃었고 물결 너머 닿을 수 없는 시간들은 터키석 푸른 빛깔로 펼쳐저 있습니다. 물속에 잠겨 버린 수중 ..

슬픈것이 흘러가는 시간이다 - (20) 압록강에서

압록강에서 / 이형권 돌아와 묻노니 그대는 지금 어느 구비를 흘러가고 있느냐. 그대에게 전해 줄 안부도 없이 울어 줄 마음 한 자락도 없이 황망한 가슴 홀로 와 앉았으니 그대는 지금 어느 구비에서 눈물짓고 있는 것이냐. 바라보면 세월 저편 강촌에는 달맞아꽃이 피고 그대가 부르던 ..

슬픈것이 흘러가는 시간이다 - (19) 꽃 무덤

꽃 무덤 / 이형권 산 위의 꽃밭에 홀로 누워 있네 사랑도 그만두고 그리움도 그만두고 바람 속에 홀로 누워 있네. 구름이 스쳐가고 천둥이 몰려가고 모두가 떠난 자리 꽃은 후회처럼 피어나 누우면 저 세상의 어디쯤 어둠이 내리고 별빛이 내리고 관棺을 내리는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뼈..

슬픈것이 흘러가는 시간이다 - (18) 대덕산에서

대덕산에서 / 이형권 산정에는 한 줄기 바람이 일고 그대와 내가 지나쳐 온 길들은 신갈나무 숲 속에 묻혀 있다네 사랑과 미움이 교차했던 날들 세상의 길들은 산 아래 놓여 있고 비바람 휩쓸고 간 숲길을 지나면 하늘빛 호수에 눈물처럼 피는 꽃 행여나 그리운 마음에 꽃 속에 누워 보면 ..

슬픈것이 흘러가는 시간이다 - (17) 부치지 못한 편지

부치지 못한 편지 / 이형권 돌아가면 그대에게 가겠노라고 다짐했네. 쏟아지는 천지天地의 물줄기를 따라서 자작나무 숲을 지나는 바람결을 따라서 다시 그대에게 돌아가겠노라고 다짐했네. 하늘에는 태평스럽게 구름이 피어오르고 바람은 가녀린 흰색 담자리꽃 뒤에서 불고 초원의 길..

슬픈것이 흘러가는 시간이다 - (16) 초원에서

초원에서 / 이형권 나 죽어 바람이 되었다가 구천을 떠도는 슬픈 하늬바람 되었다가 이승에서 지은 죄 흰 머리카락처럼 풍화되어 선한 눈빛 되었을 때 초원을 떠도는 악사가 되리 그대 뼈로 만든 피리 구멍 속을 빠져나오는 주인 없는 노래가 되었다가 어느 무정한 손길의 발길에 머무는 ..

슬픈것이 흘러가는 시간이다 - (15) 초원의 노래

초원의 노래 / 이형권 초원으로 가리라. 밀원을 스치고 불어오는 부드러운 저녁 바람을 찾아서 가없는 방랑자가 되리라. 가서 이몸, 뼈도 주고 이몸, 살도 주고 자줏빛 붉은 노을이 되어 하늘 끝까지 걸어가리라. 넓고 넓어서 텅 비어 버린 세상 초원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나그네가 되리..

슬픈것이 흘러가는 시간이다 - (14) 현곡玄谷에서

현곡玄谷에서 / 이형권 그대에게 가 닿을 수만 있다면 천 년 세월 이끼가 머물지 않은 폐사지의 석탑처럼 그대에게 순결할 수 있다면 현곡*이여 홀로 떠도는 이 산하가 쓸쓸하지 않으리. 그리운 듯 외로운 듯 뒤척이는 무덤가 솔숲을 지나 생이여 풀리지 않는 모순이여 헤아릴 수 없는 운..

슬픈것이 흘러가는 시간이다 - (13) 봄의 노래

봄의 노래 / 이형권 나 그대에게 한 송이 매화꽃이고 싶었네 이른 봄, 돌담 가에 피는 노란 산수유 꽃이고 싶었네 나 그대에게 한 줄기 들바람이고 싶었네 산골짝을 흐르는 시냇물에 부서지는 햇살이고 싶었네 토담 밑에 피어나던 수선화 같던 누이여 지난 날 우리가 품었던 슬픈 여정을 ..

슬픈것이 흘러가는 시간이다 - (12) 경주에서

경주에서 / 이형권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황룡사 폐허의 들판에 제비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사랑인 듯, 이별인 듯, 그리움인 듯 모량리 왕릉의 숲길에 진달래 한 송이 피었습니다. 꿈인 듯, 노래인 듯, 지나간 추억인 듯 무너진 성터 돌틈 속에 산자고 한 송이 피었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