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꽃에 바치는 노래
-그라나다에서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석류꽃처럼 매혹적인 한 여자를 사랑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외면당하고 말았습니다.
상심한 그는 눈부신 태양이 떠 있는 이베리아반도 외진 벌판으로
늙은 수도승처럼 길을 떠났습니다.
그의 유량은 예정된 운명을 간직한 존재들이 느끼는
쓸쓸함으로 이곳저곳을 흘러 다니고 있었습니다.
오렌지 숲 속의 바람처럼
모든 사념의 뿌리가 가벼워지기 시작하던 어느 날
그의 발길은 스페인 남부의 그라나다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
시에라네바다 산맥은 흰 눈이 쌓여 신비로운 성채를 이루었고
황금빛 석양이 대지를 물들이자
주홍빛으로 타오르는 술탄의 궁전은
수밀도水蜜桃 우거진 낙원의 숲이 되어
애달픈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추억으로 충만한 왕궁의 뜨락에서
그는 마음을 빼앗겨 버린 채
허공 속에 사라져 버린 사랑의 빛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환희, 사랑의 아픔, 사랑의 폐허...
모두가 달빛처럼 쏟아져 내리는 운명의 시간이었음을
그는 여행의 마지막에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쏟아지는 왕궁의 달빛 아래서
자신의 상처를 담아 노래 한 곡을 만들었습니다.
끝없이 흘러가는 슬픈 강물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고
가슴이 휑하게 뚫힌 바람 소리를 마주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한
이 노래는 지금도 추억처럼 애달프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 > 이형권무심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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