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권무심재

슬픈것이 흘러가는 시간이다 - (66) 고행과 순례와 깨달음의 길 (인도여행)

나무향(그린) 2018. 5. 17. 07:20

고행과 순례와 깨달음의 길 / 이형권

 

-인도여행

 

세상의 모든 여행자는 인도를 꿈꿉니다.

첨단과 원시, 문명과 문맹, 성지와 거지가 공존하는 나라.

그곳에는 우리가 고통스럽게 지켜봐야 할 삶의 극단이 있습니다.

 

새벽하늘처럼 맑고 투명한 영혼의 순수가 있는가 하면

아수라장 같은 혼돈과 무질서, 방종이 넘칩니다.

 

모든 운명은 까르마業에 의해 결정되고

생로병사의 일상마저도 신의 결정이라고 믿고 사는 사람들

 

여전히 짐승처럼 삶의 밑바닥을 채우고 있는 불가촉천민들…

거리를 떠도는 소떼를 신성시하고 임자 없는 개와 돼지가

인파 속에 뒤섞여 밀려다녀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습니다.

 

 

물질적 삶은 빈곤하지만 정신의 삶이 풍요로운 탓인가.

만사가 노 프로블럼!

삶을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경쟁하는 일이 없으니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툼이 없고 미움이 없고 불만이 없고 불행이 없습니다.

마음은 이미 평화롭고 여유로우니 이 기묘하고도 낯선 세계는 분명

거대한 혼돈이요 불가사의요 신비로운 경지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인도로 떠납니다.

헤아려 보지 못한 삶의 보자기를 뒤집어 보기 위해서

알 수 없는 마음의 밑바닥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1

사막의 오아시스에 건립된 라자스탄주의 작은 왕국들

모래와 낙타와 끝없는 지평선이 있는 곳

이곳의 삶은, 강을 따르며 살아온 여느 곳과 다르게

아라비아 상인들과의 대상무역으로 영화를 누려 왔습니다.

 

수에즈 운하가 건설된 이후 교역로서의 운명을 다하여

깊은 사막의 품속에 잊혀진 은둔의 땅이 되었지만

바람의 도시라 불리는 비카나르의 고성古城에 가면

라자스탄 약사들이 들려주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흐르고

사막에서의 하룻밤은 신비롭기 그지없습니다.

 

 

자이살메르, 12세기 동서무역로의 요지로 건설된 사막의 도시

대상무역으로 영화를 과시하던 부호들이 살던 흔적으로

한때 골드 시티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도시의 진정한 매력은 비문명성에 있습니다.

비록 초라하고 남루한 삶의 의례를 걸치고 있지만 소박하고

진솔한 삶의 가치가 어떤 눈빛으로 살아 있는지 깨닫게 해줍니다.

 

원색의 아름다움이 빛나는 흙담과 예술미 넘치는 벽화들,

사막을 더돌며 지친 삶을 위로하는 약사들의 노랫소리…

달빛으로 물든 옛 왕궁의 성벽에 앉아서

우리는 저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영혼의 선율을 듣게 됩니다.

 

 

조드푸르는 자이살메르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왕국입니다.

도시 전체가 파란색 집들로 가득 차서

저녁 무렵이면 푸른 보석처럼 빛이 나는 땅입니다.

 

도시를 압박하는 거대한 성채 메헤랑가르 궁에서 내려다보면

사막 위에 건설된 도시가 마술 같은 매력을 발산합니다.

 

거칠고 음울한 흙빛 사막에서 보는 블루의 물결

마치 지중해 어느 도시를 바라보는 듯 신선합니다.

 

무역로를 개척하던 시대, 사막은 권력을 향한 최전선의 싸움터였고

용병으로 키워졌던 사내들이 스스로 지배자가 되어

철옹성으로 쌓아올린 절벽 위 라자스탄의 성채는

그들의 용맹성을 보여 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아아, 끝없이 펼쳐진 사막.

낙타를 타고 저 멀리 모래바다 속으로 들어가면

사막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여인들이 원색의 사리를 날리며

마을을 향해 물동이를 이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시나브로 사막의 대지를 물들이는 저녁노을이 타고

분칠한 어둠 너머 별들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사막의 밤은 속세의 기억을 덜어 내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마저 허물어 내는 듯합닌다.

 

여행이 하나의 작은 꿈으로 시작되었듯이

왜 인도를 꿈꾸어 왔는지를 깨닫게 해 주는 풍경들입니다.

 

 

2

인도에는 지상에서 가장 빛나는 사랑의 흔적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무질서하지만

백색의 진혼곡이라 불리는 이 영묘 앞에 서 있으면

인간이 만들어 낸 황홀함의 극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아그라의 야무나 강변에 서 있는 타지마할입니다.

 

무굴제국의 황제 샤자한이 아내 뭄타즈 마할을 위해 지은 무덤

역사 속에서 이름 높은 황제들이 수많은 여인들을 거느렸지만

오직 한 사람만을 사랑하였던 황제 샤자한은

흰색의 대리석처럼 순결한 사랑의 전설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열네 번재의 공주를 낳고 왕비가 숨을 거두자

머리가 하얗게 셀 정도로 슬픔에 젖어 있던 황제는

아름답고 순결한 사랑의 기념비를 세우기 위해

22년 동안 국력을 쏟아 부어 타지마할을 완성합니다.

 

국부가 탕진되어 결국은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유폐되었고

아그랑성의 망루에 갇혀 타지마할을 바라보던 황제는

숨을 거둔 후에야 꿈에도 그리던 아내 곁에 안장되었습니다.

 

그러나 타지마할의 위대성은

누구나 알고 있는 타지마할의 이야기 속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진과 이야기 속에서 헤아릴 수 있는 지식이 아니라

실재하는 존재가 보여 주는 감동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깨닫게 해 주는 데 있느지도 모릅니다.

 

문루에 들어선 순간,

모두가 실낱같은 비명을 토해 내며 멈추어 섭니다.

 

숨 막히는 절정, 아찔하고 황홀한 세계,

비로소 우리는 타지마할의 진정성을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3

신들의 나라 인도에는 바라나시가 있습니다.

힌두교의 7대 성지 중의 하나로 영적인 빛이 충만한 도시 카시,

 

3천 년의 세월을 간직한 지구상의 가장 오래된 이 도시는

성스러운 강 갠지스가 흐르고 있어 수백만의 순례자들이 찾고 있습니다.

 

히말라야에서 발원하여 메마른 인도의 대지를 적셔주는 갠지스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홍수의 재앙을 시바신이

머리로 받아 생겨난 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간 세상의 제업을 씻는 특별한 힘이 있다고 믿어 왔고

죽기 전에 이 강물에 몸을 씻고 윤회의 강을 건너는 것이

인도인들의 오랜 염원이었습니다.

 

 

강물에는 꽃과 유등油燈, 동물들의 배설물과

영혼이 떠나 버린 인간의 육신…

수많은 사람들이 벗어버린 제업과 번뇌와 오물이 흐르고 있지만

순례자들은 화장터의 연기를 헤집고 강물 속으로 들어가

머리를 조아리며 경배하고 성수를 마시고 몸을 씻고 있습니다

 

강변을 따라 축조된 가트에 흩어져 있는 수십 개의 화장터에는

쉬지 않고 연기가 피어오르고 장작더미 위에서는 시체가 타고 있습니다.

 

화장을 관장하는 이들은 분주하게 장작더미의 불꽃을 헤집어 대다가

이내 잿더미와 함께 타다만 시신을 강물 속으로 밀어 버립니다.

 

라마! 라마! 라마!

오직 라마 신만이 알고 있을뿐, 타다 남은 장작더미를

개떼들이 뒤지고 이곳에서는 아무도 슬퍼하지 않습니다.

그저 모두가 무심하게 활활 타오르는 불빛만을 바라볼 뿐입니다.

 

 

바라나시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습니다.

삶과 죽음이 하나가 되어 유유히 갠지와 함게 흐르고 있습니다.

 

삶이란 화장터 장작더미 위에 타오르는 한줄기 연기와 같고

죽음이란 갠지스강 너머 동쪽 언덕으로 거처를 옮겨 가는 것…

 

이곳에서는 무엇을 말하든 무엇을 생각하든 무엇을 행동하든

자유롭고 거룩합니다.

 

눈앞의 현실은 지옥처럼 비참하지만 혼돈 속의 미소처럼 성스러운 곳

세상에서 이토록 처절하게 죽음을 대면하고

호흡하는 곳이 또 있겠습니까.

 

이곳에 서면 누구나 인생의 순례자, 사두가 되어 묻게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윤회란, 업이란, 해탈이란 무엇인가.

 

죽음 저편에 도사리고 있는 저 존재의 그림자는 무엇인가.

그래서일까요. 인도사람들은 죽기 위해 바라나시로 가고

슬픈 영혼을 간직한 길손들은 삶의 의미를 묻기 위해

바라나시로 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