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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것이 흘러가는 시간이다 - (65) 여행자의 혼을 사로잡는 곳 (문명의 교차로에서)

나무향(그린) 2018. 5. 16. 07:18

 

여행자의 혼을 사로잡는 곳 / 이형권

-문명의 교차로에서

 

온 산하가 화려한 춘색으로 도도해진 봄날에

오랫동안 꿈꾸었던 여행지, 터키를 향해 떠나갑니다.

 

투르크의 붉은 깃발 위에 새겨진 별처럼 인간의 대지에 쓰러진

찬란한 역사가 숨 쉬는 땅.

 

아시아와 유럽 두 대륙이 만나서 이룩한 문명의 화랑에는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 기독교와 이슬람, 제국과 제국 …

 

인류 역사의 수많은 봉우리들이 모자이크 성화처럼 조화를 이루어

신비로운 매력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7세기 비자스는 눈먼 땅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라는

델피 신전의 신탁을 받고 비잔티움을 건설합니다.

 

그리스의 신화처럼 영화로웠던 비잔티움은 로마의 정복지가 되었고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동로마의 수도로 탈바꿈한 이후

천 년의 세월 동안 세계의 중심이 되어 문명의 세기를 구가했습니다.

 

그러나 1453년 동방에서 몰려온 새로운 정복자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역사는 새로운 장으로 넘어갑니다.

 

갈등과 대립과 약탈과 정복에 의해 동양과 서양이 만나고

성경과 코란이 만나고 그렇게 만남은 새로운 문명의 씨앗이 되었고

다채로운 비단 폭처럼 화려한 문명의 교차로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 문명의 길을 따라서 초기 기독교의 역사가 이루어졌고

이슬람의 예언자 무하마드의 언행록에 따라

무슬림의 영광이 재현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땅은 아시아와 유럽은 물론 발칸과 중동이 섞여 있으며

금발과 흑발, 갈색과 빨강머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종이 피를 나누며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하고 독특한 문명의 전시장을 이루었습니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따라 화려한 술탄들의 궁전이 펼쳐진 이스탄불

자연의 경이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카파도키아의 동굴호텔

신과의 완전한 합일을 위해 추는 신비의 춤 수피댄스의 고장 콘야

황금의 땅이라 불리며 로마 초대 유적지를 간직한 쿠사다르

평생에 한번 이곳을 여행할 수 있다면 축복이라 했던 에게 해

그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하는

초기 기독교의 성지들 …

 

터키는 분명 신화에서 깨어나 역사가 되는 한 편의 서사시처럼

신비로운 비밀을 간직한 여행지입니다.

 

더구나 유럽의 어느 나라와는 달리 순박하고 열정적이며

동양적인 감성을 지니고 있기에

우리에게는 오랜 형제를 만난 듯 친밀감을 느끼게 합니다.

터키의 영웅 아나투르크의 영묘가 있는 앙카라에 가면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바친 젊은 넋을 기리는 탑이 서 있습니다.

 

"여기 한국에서 헌신한 토이기 용사들의 묘로부터 옮겨 온

흙이 담겨 있노라."

 

비문은 우리가 피를 나눈 형제임을 가슴 뭉클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초원의 대지를 누비던 유목민의 후예가 대륙의 극지로 이동하여

이름마저 낯선 존재가 되었지만

아직도 몸속에는 뜨거운 피가 흘러

거역할 수 없는 운명처럼 만단정회를 품게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