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밤, 파두를 듣다 / 이형권
-리스본의 어느 주점에서
대서양의 망망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포르투갈은
슬픔과 고독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합니다.
엄숙주의에 빠져 있는 서유럽 사람들과는 다르게
개방적이면서 호탕함을 간직한 바이킹의 후예들,
그 내면에는 갈망, 동경, 우울, 고독이 쌓여
비구름을 몰고 오는 저녁 하늘처럼 젖어 있습니다.
바다를 누비며 호령하던 해양대국에서 작은 소국으로 전락한 현실이
그들의 삶 속에는 숙명처럼 내제되어 있는 듯합니다.
화려했던 제국은 사라지고 회한만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삶은 슬프고 어두운 그림자가 되었고
선술집의 뒷골목까지 흐르고 넘치는 한이 되어서 가슴 밑바닥까지
끓어오르는 우울한 노래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곳, 비내리는 거리에서 파두를 듣습니다.
항구가 붐비던 때, 비릿한 사창가의 추억을 간직한 거리에는
여전히 취객들의 다툼 소리 소란스럽고
골목의 어둠을 다 비추지 못하는 홍등가의 불빛 너머로
비명 소리 같은 고음의 노래가 빗방울처럼 부서집니다.
파두는 슬픈 운명을 간직한 비련의 주인공처럼
비 내리는 밤 나그네의 여수를 달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바다처럼 변화무쌍하고 여린 감성을 지닌 사람들의 내면을
명주실처럼 치밀하게 직조해 낸 노래,
떠돌이 뱃사람들의 노래였다고도 하고
그들을 기다리던 연인들의 애상곡이었다고도 하고
처형장으로 끌려가던 죄수들의 마지막 노래였다고도 하고
………
파두는 온전히 슬프고 어두운 그늘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침몰하는 뱃전에서 마지막으로 토해 내는 비탄의 소리 같은
그 노래는 밤 깊은 리스본의 골목길 카페에서 폭발할 듯한 고음으로
외롭고 허기진 길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대여, 다시 스무 살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당신은 그 길모퉁이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겠습니까.
시간의 저편을 돌아
스무 살의 어여쁜 미루나무 잎새처럼 바람에 살랑인다면
당신은 카보다로까* 황량한 바닷가 언덕에 선 등대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겠습니까.
아아, 노래는 부질없는 꿈처럼 간절하고
마음 가눌 길 없는 이국땅의 밤은 깊어만 갑니다.
- 카보다로까* 유럽 서쪽 대륙의 끝이라 불리는 모르투갈의 땅끝마을.
망망한 대서양을 향해 하얀 등대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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