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바다에 길을 묻는다 / 이형권
-한 려 수 도 에 서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물길을 따라 욕지도로 갑니다.
연화도 노대도 두미도 사리도 초도 갈도 국도 녹도…
이름모를 작은 섬들이 새떼처럼 내려앉은 연화군도를 따라서
아득한 세상 끝으로 흘러갑니다.
욕지도는 한려수도 아랫녘에 흩어진
서른아홉개의 섬들을 아우르는 이름입니다.
천여 호의 주민이 살 만큼 큰 섬이지만
뭍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조용한 섬 마을입니다.
자욱한 안개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풍경은
소박하지만 애뜻한 그리움이 묻어 있고
거친 바람을 맞으며 연모의 세월을 살아온 해안선의 작은 마을은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을 듯 순정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먼 옛날 난세를 피해 수도승이 찾아왔다는 연화도는
이 땅에 마지막 남은 비경이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한산도 비진도 사량도의 명성에 가려 이름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호수처럼 잔잔하고 대양처럼 망망한 바다를 품고 사는 곳
연화봉으로 오르는 언덕길을 올라서면 거기
숨이 멎을 듯 장관인 용머리 해벽이 펼쳐집니다.
울릉도 대풍감 같기도 하고 가거도 섬등개 같기도 한
푸른 절벽이 사자후처럼 일어서 달리고 있습니다.
400년 전 이곳에 한 노승이 서 있었습니다.
시자侍者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스님, 어떠한 것이 도道입니까?
스승은 욕지도를 가리키며
욕지도관세존도欲知島觀世尊島라고 말했습니다.
도를 알고 싶거든 세존도를 보라는 이 선문답은
알고자 한다면 그대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라는 뜻입니다.
그 후 노승은 바다 속에 수장水葬되었다가 연꽃으로 환생하였고
섬 이름이 연화도라 불리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하여 욕지도 연화도는
한가롭게 풍경에 취해 돌아오는 여정이 아닐는지 모릅니다.
무명에 가득 찬 어린 시자처럼 여름 바다에 길을 묻고자 합니다.
아침 햇살을 받으면서 출항하는 통통배의 부산함이 있고
적막한 밤의 여로를 펼치는 저녁노을의 비애가 있는 곳
외딴섬에 유폐된 길손의 시간은 어느 때를 가리키고 있을는지요.
봄일까요, 가을일까요, 추운 겨울일까요.
빈 배에 몸을 싣고 망망대해로 흐르는 나그네처럼
알 수 없는 시간들이 또 우리 곁을 스쳐 지나겠지요.
돌아보니 온통 망망한 수평선뿐이었다는 시인의 고백처럼
욕지도와 연화도는 고독의 내면을 바라보기 좋고
새벽녘 몽환의 안개가 밀려오는 처마 밑에서 홀로 깨어
흐느껴 울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입니다.
그곳에서 인욕의 삶처럼 질긴 그리움을 만나서
뜨겁게 해후하는 여행이 되기를 꿈꾸어 봅니다.
'▒▒▒▒▒※※☆▒▒ > 이형권무심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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