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권무심재

슬픈것이 흘러가는 시간이다 - (68) 당신이 지나간 자리 하늘꽃밭이여 (백두산에서)

나무향(그린) 2018. 5. 19. 06:56

당신이 지나간 자리 하늘꽃밭이여 / 이형권

-백두산에서

 

그곳에 깃든 태고의 숨결을 찾아갑니다.

하늘 아래 최초의 땅 천지,

그곳에 부는 바람, 햇빛, 나무, 꽃, 구름, 비…

태고의 자취를 지닌 그 모든 것들을 만나러 백두산으로 갑니다.

 

천리수해千里樹海 원시림의 산록을 지나

해발 2000 미터의 툰드라, 수목장생 한계선을 오르면

거기 끝도없이 펼쳐지는 평원의 초록빛 융단 위에

백화난만百花爛漫 꽃들이 피어납니다.

 

수묵의 선처럼 간결한 초원의 나신 위에는

만병초, 구름송이풀, 바위구절초, 두메양귀비, 흰색의 담자리꽃…

7월의 백두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꽃으로 피어나는 시절입니다.

 

천지의 바람과 눈보라와 적막과 외로움이 키워 낸 것들

바라보면 눈물겨운 작은 꽃들이 펼쳐 내는 우주

그 사이로 스쳐 가는 한 줄기 바람이 되어서

이승의 마지막이어도 좋을 황홀한 풍경을 걸어갑니다.

 

잃어버린 땅 백두로 가는 길은 네 갈래가 있습니다.

북파 서파 남파 동파…

모두 언덕이란 뜻의 중국식 지명 '파坡'가 붙어 있습니다.

 

청바이산의 북파와 서파, 우리는 그설운 이름을 따라

민족의 성산 백두에 오를 것입니다.

 

북파는 산세가 급하지만 장백폭포의 장쾌한 기세를 만끽할 수 있는 곳

한 걸음 한 걸음 1236개의 계단 밟고 천문봉에 올라서

백두를 품에 안고 천지의 성수에 목을 축입니다.

 

서파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을 보존한 장대한 고원 지대

산문山門부터 해발 2400미터의 청석봉으로 오르는 길에

태고의 신비를 느끼게 하는 금강대협곡의 파노라마가 펼쳐지고

온 천지가 들꽃 흐드러지게 핀 고산의 화원, 그 길이 끝나는 곳에

장군봉 백운봉 천문봉 차일봉 창석봉 자하봉 용문봉…

백두의 16연봉이 숨 죽여 그림자를 드리운

겨레의 신화가 숨 쉬는 하늘 호수가 있습니다.

 

천지와 백두산록의 들꽃이 가슴 벅찬 감동의 절경이라면

고구려의 옛수도 환인과 집안 땅에서는

불멸의 역사를 순례하는 감동을 안겨 줍니다.

 

대륙을 호령하던 주몽의 기상이 서린 오녀산성에 오르고

장대한 고구려의 숨결이 스민 1만 2천여 기의 무덤떼와 고분벽화

동방의 금자탑이라 불리는 장수왕릉과 광개토대왕비의 역사를

가슴에 새깁니다.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은 압록강 푸른 물결 위에서

회한으로 얼룩진 세월의 노래를 목 놓아 불러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