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문]
존재의 저 뒤쪽 어디를 찾아 나서는 노래 / 김형수 시인
1
이형권의 시를 읽다 잠든 밤에는 꼭 슬픈 꿈을 꾼다. 그의 어디에 이렇게 간절한 마음이 숨어 있는지 모르겠다. 한 차례 역사의 푹풍우가 지나간 자리에서 폐허에 취하고 절망에 중독되었던 시절에 함게 맡던진한 허무의 냄새, 한도 끝도 없이 뒤를 향해 걷는 지독한 그리움의 냄새.도대체 오늘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아침에 눈을 뜨는 의미를 어제 이전으로 돌아가는 일에 두고 싶은, 이 미필적 고의에 의한 퇴행의 열망을 피할 수가 없다. 떠나지 않기 위하여 한없이 떠나야 하는, 무한 일탈을 향한 자발적 현실반납이다.
2
시는 노래이다. 적어도 이 노래의 자질에서 이형권만 한 재능은 흔치 않을 것이다. 열아홉, 스무 살 때 이미 검증된 얘기이다. 광주의 숱한 감식안들이 소년 이형권의 시를 찬미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가 재수생 시절에 썼다는 화제작 <머슴새>가 전남대 교지에 발표되었을 때도 문단이 들썩거리도록 소란을 피운 것은 그의 학우들이 아니라 선배 시인 목객이었다. 세상은 아프고 민심은 흉흉한 1980년대 중엽의 지방 도시가 흡사 르네상스를 맞는 듯 시의 미광微光에 싸였던 것도 그를 꼭짓점으로 한 후배 문청文學靑年들이 출현하여 '혁명적 김소월'의 길을 다투듯이 발산한 시심詩心 때문이었다. 당연히 그를 앞세운 '광주청년문학회'는 전국적 명성을 떨치며, 문화전통과 고유 미학을 연마하는 훈련장이 되었다. 내가 이형권과 어울려 다니며 문학의 영광을 섬기던 기억이 매우 공적인 것으로 남아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심미적 감수성은 훈련되면 될수록 비극을 인지하는 능력 또한 키우는 법이다. 20대의 그로서는 잠시도 마음이 평온할 새가 없었을 것이다. 시골에서 올라와 학창시절을 보냈던 청춘의 도시는 극심한 5.18의 후유증을 앓고 있었고, 그는 졸업 후에도 한동안 발목이 묶인 새처럼 달아나지 못했으며, 그렇다고 다시 치열한 전투성을 요구하는 역사 현장의 복판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언제부터 그런 시간들이 죄다 후일담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가 한때 서울에서 출판사에 취직하여 교정지를 들고 다닐 때까지만 해도 다들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위한 예비동작으로 추측했는데, 무엇이 재미없었던지 이내 퇴직해 버렸다. 대신에 카메라를 들고 한사코 도회를 벗어나 변방을 떠돌았다. 이후의 소식은 모두 풍문으로 전해 오고 있을 뿐이었다.
여행은 불가피하게 현장과 불화하는 영혼이 세계를 사랑하는 형식이다. 누구나 발밑에 마름을 내려놓을 수 없으면 길을 나서게 되어있다. 나는 그가 처음 '떠남'을 단행한 장소와 시간을 추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한없이 신산스러운 선택에 사실은 깊이 동감했던 축이다. 어쩌면 당시에 그가 선택한 코스야말로 80년대의 정신들이 사용하지 않은 길이며, 5.18이 필요로 했던 또 하나의 통로였다는 데 이의가 없다. 사상은 익지 않고 행동만 앞서던 민주주의 도시에서 그는 다들 혁명가처럼 오늘의 열정을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보다 미래를 향한 열망에 투여하는 광경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모두가 쫓기듯이 '떠나가 버린 자리'를 슬금슬금 찾아다니면서 그 빈자리에 남아 있는 외로운 자취들과 대화하고자 했다.
어디쯤이었던가.
그대와 내가 처음으로 손을 잡았던 길이
떨리던 가슴으로 입맞춤을 하던 숲그늘이
(중략)
뜰 앞에 꽃잎은 시들어 가고
허물어진 자취에 저녁 새가 울고 갈 때
-<잊혀진 정원> 중에서
이렇게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옛 풍경, 옛 흔적이 그걸 말한다.
그 한 자락이 문화유산을 찾는 여정으로 이어지는 것을 주변에서도 대개는 어울리는 일이라 여겨 말리지 않았다. 그러면서 반드시 문단에 돌아올것을 기다리고 손짓했으나 그는 감감 무소식이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여의고 어언 나이 50을 바라볼 무렵에야 불쑥 이 시들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사랑의 열정도 성취의 욕망도 뭉뚱그려 하나로 만들어 버린, 해설은 생략하고 오직 노래만 안고 온, 지극히 이형권다운 귀환이다.
3
시는 인류가 최초부터 함께해 온 근원적인 장르에 속한다. 여기에는 원시인류가 야생의 벌판에서 내지르던 즉자적 발성기호에 대한 그리움이 배어 있다. 번개가 치고 가지가 부러지는 자연의 소리들 틈에 짐승이 울부짖고 인간의 비명과 웃음소리가 섞일 때 존재와 존재 사이에 알아듣지 못할 말이 있었던가? 그러나 문자가 출현하고, 근대 이성주의와 함께 활자의 권위가 독보적 지위에 오른 이후 노래의 운명은 달라져 버린다. 오늘날 시의 근육을 노래에 두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시인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형권은 시가 말의 '뜻(의미)'을 조직하는 장르가 아니라 그 '울림(운율)'을 조직하는 장르라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체득해 버린 사람처럼 보인다.
어제는 항구에 가서 그대를 보았다
머지않은 눈보라의 예보가
그물처럼 내리고
저마다의 가난과 행복을
한 두릅씩 흥정하는 인파 속에서
흰 파도처럼 웃어대는 그대를 보았다
-<마지막 항구에서>일부
이같은 그의 진술력,소설의 묘사를 연상케 할 만큼 빼어난 풍경을 제출하는 시적 수사들은 모국어의 발음이 만들어 내는 음악적 질서를 상실해 가는 사람들에게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받침 하나라도 운율 바깥에 방치되는 걸 견디지 못할 만큼 정갈한 그의 시를 편편이 '악보 없는 음악'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시가 노래라는 사실은 그것이 한 번 읽히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반복해서 읽혀야 한다는 장르적 숙명에 의해서도 증명된다. 그러나 개인과 개인 간의 연대감이 줄고, 삶에 대한 집단적 공유가 사라지면서 시는 점점 노래를 잃는다. 시인이 언어를 피아노의 건반처럼 다루던, 그리하여 시에서 뜻보다 먼저 울림이 전달되던 아름다운 전통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형권의 시가 지금 문단에서 한창 지가를 울리는 젊은 건각들에게 읽혀야 할 이유가 있다면 나는 그것을 바로 이 점에 두고 싶다. 이즈막의 시에서 노래가 실종된 가장 큰 이유의 하나는 공동체적 연대감의 소멸이요 집단적 감각의 붕괴일 것이다.
운율은 사사로우면 놀이가 되고, 지공무사에 닿으면 시대적 호흡이 된다. 그래서 시가 집단의 기억에 의존하지 않는 것처럼 불행한 사태는 없다. 우리가 김소월에 시에서 1930년대의 숨소리를 듣는 이유는 그의 애상이 사감이 아니라 민족의 것이요, 그 시절을 견딘 힘없는 백성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형권의 시가 근자에는 없는 음악적 신명을 대동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가 각별히 골라서 쓰는 고유명사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아버지,어머니,칠산바다,견훤,제비집,길 따위는 모두 속담이나 민요의 그것처럼 집단의 기억에 의존해 있는 것으로서, 학술적 용어로 규정하자면 문화유산적 가치를 갖는 정서적 등가물들이다.
어둠 속에서 산 그늘처럼 의미해져 가는 것들
그것이 삶이었던가
그대와 불 밝히고 살았던 짧은 청춘의 시간이
밤의 적막 속으로 사라져 갈 때
헝클어진 너의 머리칼을 만지고
야윈 뺨을 만지고 차가운 입술을 만져 보지만
그리움으로 서 있구나
옛 석등이여
-<축서사에서>중에서
이 시가 유감없이 보여 주듯이, 그에게서 어떤 사물이나 광경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이 탄생하는 양상은 놀랍다. 서정적 화자가 '서있는 장소'와 '보는 풍경'사이의 괴리를 통일시키는 것은 축서사도 석등도 아닌, 행간에 자욱한 그리움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없이 슬픈 미련에 매달리는 그의 시적 몸부림도 이 집단적 기억에 대한 곰삭힘에서 나온다. 마치 정지용의 <고향>같은 곳을 영영 버리지 않고 찾아갈 듯이, 그는쉴 새 없이 여행하면서도 '탈주'가 아니라 '귀소'를 택한다. 원인 제공자는 유년체험일까 소년체험일까 고향집 풍경일까? 그에게서 존재의 원점을 이상화하는 김소월적 그리움이 생기는 것은 왜인지 알수 없지만 이로부터 <축서사에서>와 같이 설익지 않은 절제된 노래가 독자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폭은 한없이 크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인간의 열정이 그리움보다 욕망을 지향하게 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건설이나 파괴에 대한 본능적 거부, 개미가 아닌 베짱이처럼 그늘을 찾으며 흐르는 것에 그냥 적응하고자 하는 심성은 태생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 측면에서 그가 시대와 불화하지 않을 길은 없다. 온통 허물고 세우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세태를 등지고 그는 유구한 존재의 저 뒤쪽을 향해서 한없이 걷고자 할 뿐이다. 그의 서정적 화자가 하나같이 '떠돎'과 '머묾'의 상태를 동경하는 이유는 그가 이렇게 유랑하는 영혼을 긍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바람에 휘날리는 옷고름 같기도 하고
골짜기를 흘러가는 시냇물 같기도 하고
귓가에 흐르는 구성진 노래 같기도 합니다.
들판에는 무심한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시골 아낙 서넛이 장바구니와 함께 앉아 있고
고개를 넘어가니 텅 빈 시간 속에 정거장이 있습니다.
덜컹거리는 시골 버스는 흙먼지를 날리고
산마루에 걸린 구름은 추억을 날릭고
정처 없이 모두가 떠나고 있습니다.
-<길>전문
'시골 버스'가 '흙먼지를 날리'는 옛 풍경을 읽고 또 읽는 회한이 그의 본능임에는 틀림없다. 그의 이 같은 의식 속에서 길은 끝나는 곳에서 다시 시작되고, 삶도 세월도 역사도 그렇게 이어진다. 문제는, 그러면서 고착되는 '유랑의 회로'인데, 여행이 썩지 않기 위해서 일상의 웅덩이를 빠져나가는 행위라면, '여행만으로 사는 삶'에는 그것이 그 자체로서 빠져나가지 않으면 안 될 웅덩이가 된다. 역설적이게도 웅덩이를 빠져 나가는 여행은 자신의 노래를 세상 속으로 흘려 넣지만, 반대가 되는 경우에는 모든 웅덩이가 그렇듯이 세상이 받아 주지 않는 '소음 같은 것'이 되기도 한다. 그가 그러한 공허를 모를 턱이 없다.
생이여
부질없는 날들을 많이도 헤매고 다녔구나.
나 이제 돌아가리니
아무도 나의 흔적을 기억하지 말게나.
갈피에르산의 녹는 눈 처럼
눈물뿐인 이야기를
더 이상 기억하지 말게나.
-<설산을 넘으며> 본문
본디 노래를 찾아서 떠나곤 하던 길이었는데,그 여행길에서 노래를 잃어버린 건지 모른다. 불쑥, '떠남'이 '떠남'으로 살아 있지 않고 '안주'로 멎어벌릴 것 같은 불안도 준다. 그것은 곧 허공일진대, 그새 허무주의에 접어든 건가, 어느 순간 여행의 피로가 그를 덮는 것이다.
4
김삿갓은 끝없이 '탈주'하는 삶을 살았지만 김삿갓의 노래는 언제나 세상 속을 흘렀는데, 이형권은 끝없이 '회귀'하지만 그의 노래는 종종 세상 바깥을 향해 떠내려간다. 그것은 시인이 얼마간 여행에 안주하려는 태도를 가져서 생겨난 문제로 보인다. 사실 여행시의 한계는 어떠한 수사가 동원되어도 삶의 보편 속으로 확장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너무 단정적이지 않은가. 과연 모든 여행시가 다 그러한가. 물으면 사실 그렇다고 말해도 된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은 시는 서정적 회자가 이동 중에 있을지라도 여행시라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시의 세계에서 여행에 대한 이 같은 펌훼가 발생하는 것은 그것의 유한성에서 기인한다. 기행문이 기억과 메모에 끌려 다니듯이 기행시 역시 시간과 장소에 속박되며, 그 시간과 장소는 일상 바깥에 놓이는 것이니 현실회피로서의 일탈이 된다. 따라서 여행시가 삶의 냄새를 잃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운 이녀, 오랫동안 적조하였습니다.
알 수 없는 삶의 밑바닥을 들여다보기 위해
먼 길을 다녀오기도 했지만
그냥 쓸쓸히 돌아온 발길이었습니다.
여독으로 한동안은 두문불출하였다가
다시 천석고황泉石膏肓을 벚 삼아서 부질없을 길을 나섭니다.
-<야삼경, 산사의 문빗장을 만져 보리라>중에서
어쩌면 이 시는 '여독'으로 인한 '두문불출' 하나로 여행시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극복한 마지막 예가 될지 모른다. 이제 이 지점을 넘고 나면 그의 시에서도 삶과 풍경이 괴리되는 마찰음이 섞인다. 주민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여행 안내원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다른 것처럼, 똑같은 신문 매체에서도 정치나 경제, 사회면보다 여행이나 맛기행 면은 휴식의 지면이요, 실존의 스트레스가 배제되어 헐거로우며, 삶의 갈등으로부터 무중력 진공처럼 허공에 뜨게 된다. 예컨대 '떠남의 치열성'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떠남'이 마치 삶이 아니라 취미처럼, 구도가 아니라 여흥처럼 되고, 심해지면 그곳에서 '지식 정보 편력'의 혐의까지 발생한다. 그것은 여행에 가장 깊이 관여하는 여행사에게는 여행이 구도가 아니라 비지니스일 수밖에 없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남도 가락의 절정을 알고 있는 보기 드문 시인 이형권이 귀환할 자리는 그런 의미에서 성스러운 곳의 슬픔이 아니라 속세의 슬픔이 아닐까 싶다.
그는 이즈음에서 다시 실존의 스트레스가 가득 담겨 있는, 평소 사용하던 휴대전화의 음성속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존재의 뒤쪽을 놓치지 않으려는 고독한 싸움을 버린 절경, 오지주의는 현실의 극복이 아니라 회피에 속한다. 나는 이 시집이 그 출구이자 새로운 시대의 입구가 될 것으로 본다.
이형권 스스로 이미 고백했듯이, "누구네게나 감추고 싶은 어설펐던 초보자의 시절이 있을 것입니다. / 첫 사랑 첫 고백 첫 직장… 그리고 또 처음으로 상주喪主가 되었던 때처럼"을 알고 치열하게 되묻기 시작한 까닭이다.
그래서 그 마자막을 읽는 순간 눈물이 난다. "나는 왜 처음처럼 그대를 사랑하지 못했는가. / 나는 왜 처음처럼 문학을 사랑하지 못했는가. / 나는 왜 처음처럼 여행을 사랑하지 못했는가." 그렇다면 시집을 읽고 가장 먼저 놀랄 독자는 내 생각에 누구보다도 아마 그 자신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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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김영수는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평론가이다.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지냈으며 시집《빗방울에 대한 추억》, 소설집《이발소에 두고 온 시》,평론집《반은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문익환 편전》,《옷자락에 그림자까지 그림자에 스민 숨결까지》등을 펴냈다.
'▒▒▒▒▒※※☆▒▒ > 이형권무심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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