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 이형권
나에게 시는 잊혀진 첫사랑과 같다. 까마득히 지나간 일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불현듯 찾아와서 마음을 흔들어 놓는 애뜻하고 안쓰러운 추억들… 열아홉 시절 나는 얼마나 시에 사무쳤던가. 학업도 작파하고 막연한 동경과 열정에 사로잡혀 시를 꿈꾸었으니 생각할 수록 무모하고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그러던 중 광주의 5월을 만났고 대학시절엔 시를 통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허덕였다. 선후배들과 문학회를 조직하여 작은 발언을 모색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는 졸업과 함께 생계를 꾸리기 위해 광주를 떠나왔다. 누구나 자기가 담아 낼 수 있는 크기의 그릇이 있다는 것을 뼈아프게 자인하게 되었다. 몹시 부끄러웠고 그 후로는 문학판을 기웃거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떠도는 여행자의 길에서 지난 세월의 열정이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문득문득 찾아오는 시심詩心을 바람처럼 흘려보내며 답사기와 사진 작업에 마음을 붙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차고 넘치는 노래 몇 편이 숨겨둔 연서戀書처럼 모이게 되었는데 이것이 오늘, 세상으로 보내는 첫 시집이 되고 말았다.
굳이 지난 일을 들추어 시집을 내겠다고 한 것은 아버님 때문이었다. 평생을 농투사니로 사셨지만 시를 좋아 하셨다. 문학을 하여 여행가로 이름을 얻은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다. 돌아가시기 전 암으로 고생하시면서도 당신의 생애를 손수 마무리 하기 위해 가묘假墓를 쓰고 자찬 묘비를 세우기까지 하셨다. 그 비문 속에 둘째아들을 자랑스럽게 시인이라 기록해 두셨다. 그날 나는 시인이라는 글자를 보고 가슴이 먹먹하였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 올랐고 아버님 가시는 길에 작은 시집을 준비해 드리기로 했다.
그러나 외톨이 무명시인의 시집을 서둘러 출판해 줄 곳이 없었다. 딱히 부탁할 인맥도 없었고 머뭇거리는 사이 아버님은 황망하게 떠나 가셨다. 그렇게 잊혀 가는 일이 되었는데 선뜻 손을 내밀어 주신 청년사 정성현 사장님의 대책 없는 인정이 큰 후원이 되었다. 오랜 시절 문예일꾼들의 정신적 지주인 김형수 형이 과분한 평으로 발문을 써 주었다.두 분을 비롯하여 늦깍이 시인의 문집을 빛내 주기 위해 도움을 준 분들, 오랜 세월 나의 여행을 성원해 주신 여행지기들에게 감사드린다.
돌아오는 팔월 아흐레날이면 돌아가신 아버님의 2주기를 맞는다. 늦게나마 불초한 자식이 아버님께 이 시집을 바친다.
2006년 7월 撫心齋에서
이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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