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꽃처럼 순박한 꽃이 또 있을까.
청파가 옷섶을 풀어헤치듯 마을 안길까지 내려 온 유월
강원도 산촌에는 하얗게 감자꽃이 피어 있다.
아무도 눈여겨 보아주지 않지만
감자꽃은 저 혼자 온 밭을 푸짐하게 채워 놓았다.
오랜 세월 땅을 일구며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듯
산밭의 감자꽃을 바라보면 마음이 절로 푸근해진다.
감자꽃은 그저 수수하기만 한 꽃이지만
들녘의 조붓한 언덕길에서 내려다 보면
꼭 은하수가 내려온 밤하늘 같다.
그래서 감자꽃이 한창일 때 산모퉁이 비탈밭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겨준다.
평범한 것들이 물결을 이루며 피워낸 아름다움일까.
그 희한한 매력에 절로 발길이 멈춰지고
마음은 외딴 산자락의 작은 오막살이를 찾아간다.
무너진 헛청에는 오래 전에 유물이 되어버린
쟁기 써레 코뚜레 멍석 둥우리가 거미줄을 뒤집어썼고
다 늙은 노친네가 우두커니 먼 산을 보고 있다.
적막한 한낮의 무망함을 오줌단지처럼 툇마루에 앉아서
산밭의 감자꽃을 바라보고 있다.
옛 토기에 새겨진 무늬처럼 죽죽 그어내린 밭고랑들
그곳에는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온 한 사람의 생애가 있다.
한 고개 넘어 또 한 고개
감자꽃은 초롱초롱 눈물을 머금고 상여꽃처럼 피어 있다.
감자꽃 / 이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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