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바람아래 해변에서 - 이형권
바람의 뜨락에 노을이 내린다.
산 그림자 해변을 스치고 가는 사이
소멸하는 시간의 물보라 위에
붉은 꽃이 떨어진다.
그대는 어느 세상의 저녁바람이 되었는가.
그리웠던 순간들이 안개처럼 밀려오는데
어느 생애의 길섶에서
이 바닷가의 모래톱을 생각하고 있는가.
차마 버리지 못한 기억들이
새떼처럼 저녁하늘을 날아오른다.
추억들은 차가운 바윗돌에 시들어 눕고
파도처럼 부서진 맹세는
바다의 문 앞을 서성이고 있다.
그러는 사이 알 수 없는 슬픔이
겨울바다의 정수리를 스치고
쓸쓸한 바람이 되어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그대가 처음 이 해변에 이르렀을 때
검은머리 물떼새의 노래를 기억하는가.
먼 해양으로부터 날아온 꿈들이
햇살처럼 순결하고 빛나던 때
그대가 부르던 노랫소리는
바람아래 해변의 슬픈 전설이 되었다.
해변의 저녁이 몸을 뒤척이는 시간
떠도는 목선의 뱃머리에 그대의 안부가 쌓여간다.
부디 잘가거라 무정했던 세월이여
나는 속절없이 시간의 거울을 들여다 볼 뿐
검푸른 저 빛의 바다위에
가여운 삶의 파편들이 흩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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