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의 봄 / 이형권
저리도 꽃이 붉은데
남명스님 글씨는
여직 취해 있다.
가신 지 몇 해나 되었을까
칠전선원 빈 선방에 앉아
단청같이 붉은 눈빛
낮달이 흐르던 산중
운필이 꼭 취객처럼
서글펐다.
이름난 고관대작에서
유곽의 여인에 이르기까지
벽안당 처소에서
육두문자처럼 쏟아지던 괴각
거칠 것이 없었다.
젊은 날의 순정이 그리웠던가
영산홍이 피던 날
六朝古寺 편액 아래
무현금의 춤을 추고
무우전 뒷방에 몸져누워
녹슨 철불에
꽃이 피기를 기다렸다.
때가 이르러
조계산에 우렁우렁한
범종소리 하나 남기고
자취가 없어졌으니
달마전 섬돌아래
영산홍이 피고 지도록
선암사에는
다시 못 올 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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