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암 가는 길 3 / 이형권
가지마다 저리도 봉우리가 무성한 이유는
필경 말못할 까닭이 담겨 있겠지요
생강나무꽃이 피고 진달래가 피고
사하촌의 봄빛이 부산해지도록
짐짓 저렇게 머뭇거리는 마음은
노장스님이 애를 태우며 기다리고 있는 까닭이겠지요
마흔해 전 동안거를 마치고 행각 중에
남녘의 함월산 자락에서
동자승처럼 얻어온 매화나무 두 그루
말 벗이라도 되려나 처마밑에 심어 둔 것이
용상방의 입승처럼
어느새 헌헌장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가파른 축단위 낙수물만 스치는 자리거늘
거칠고 황량한 터를 좋아하는 노장처럼
매화나무는 아랑곳하지 않았으니
인적이 끊긴 산중에서 그 많은 밤과 날들이
자줏빛 보자기에 싸인 금선의 노래처럼
성성하였던 것이겠지요.
나무 돌쩌귀 삐걱이는 소리처럼
해토머리에 무너져내린 세진루 석단
베어낸 매화나무 가지처럼 안쓰러운데
노장스님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풀을 깎고 돌축대를 고쳐 쌓는 봄날이었습니다.
다만,
올해는 떠돌이 같은 낯선 시자 하나가 들어
매화꽃 피는 낡고 빛바랜 툇마루에 앉아서
이 깊은 산중에 도착할 봄날의 첫 소식을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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