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양산 봉암사 / 이형권
그대, 그곳에 가 보았는가. 오월이면 불두화가
종소리처럼 피어나는 곳
세상을 등지고 돌아앉은
세월 잊은 蘭若
봉황의 날개짓인가
우레의 형상인가
무논에 비친 산 그림자
수미산처럼 빛나는 곳
그대, 그곳에 가 보았는가.
바위 밑 토굴 속에서
백년을 한 해처럼
맑게 사시다 간 노스님
작은 티끌처럼 사라져
좌복 위에 앉은 사리탑
산문이 열리듯
빗장이 열리는 날이면
향기로운 말씀을 찾아서
다북쑥처럼 모여드는 사람들
그대, 그곳에 가 보았는가.
찔레꽃 춤추는 길을 따라
인파에 떠밀려서
주먹밥 한 덩이 먹고
남화루 금색전 태고선원 지나
백운곡 고운 자태 마애불 너머
월봉토굴 용추토굴
흰구름이 머무는
산간 토옥까지 가 보았는가.
나뭇꾼의 길을 따라와 희양의 산빛을 보고
하늘이 감춰둔 땅이라 하여 수레를 멈춘 곳
선문의 흰구름이 되고 솔바람이 되었으니
대대로 결사의 정신이 빛나는 곳
방장도 물리치고 조실도 마다하고
오로지 맨 앞자리 首座를 자처하신 이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어보았는가
돌사람이 피리를 부는 승탑아래 마당에는
오늘도 백색 연등이 가득하고
하늘마저 어두워졌다는 적조탑비에는
봉암용곡 물소리 청정한데
그대, 그곳에 가 보았는가.
糞掃衣 한 벌에 만상을 여의고
청산에 든 흰 그림자 머물다 가는 곳
부귀영화 마다하고
목석처럼 돌아 앉았으니
비바람속에도 꺼지지 않는
빈자의 등불처럼
산문이 열리는 날이면
弔燈처럼 白燈이 걸리는 곳
그대, 그곳에 가 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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