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노래 / 이형권
그미야
가을 숲에는 어느새
무성했던 이야기들이 떠나가고 있다
이제 절벽같은 시간들만 남았다
누구나 한때, 봄날의 잎새처럼 푸르렀지만
기약할 수 없는 것이 세월이었던가.
천둥과 비바람이 치고 가는 저녁처럼
삶은 상처투성이였다
저승길에 누워 있는 노인의 모습처럼
가을 산은 만상을 품었고
떨어져 누운 나뭇잎은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그미야
바람이 불면 어느덧 시월의 끝자락이다
그 길을 따라서 하늘이 깊어지고
강물이 깊어지고 산 그림자가 깊어지듯이
낙엽 지는 가을 숲이 깊어지고 있다
깊어진다는 것은 얼마나 아득한 것이냐
서투르고 풋풋한 것들이 제 몸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비로소 앙금을 덜어내는 시간
사랑이면 더 깊은 사랑 속으로
이별이면 더 깊은 이별 속으로
가을 바람이 우리를 떠밀고 간다.
그미야
가을 숲은 긴 설움을 풀어내는 고해소와 같다.
가랑잎처럼 쌓인 슬픔을 헤아리듯이
운명처럼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가을 산 저 너머, 더 깊은 곳으로
길 위의 시간들처럼 늙고 저물어서
나는 빈 가지의 허허로움으로
새로운 계절 앞에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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