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사 무위당운 / 이형권
이 가을 누가 있어
내게 암자 한 채를 내어준다면
나는 외청량사 무위당에 가서
한 철을 살리
천 길 낭떠러지 아래
토벽으로 빚은 작은 거처
세상의 길을 여의고
홀로 깊어지는 절벽만큼이나
쓸쓸하게 한 철을 살리.
지나온 길을 지워버렸으니
가지 못한 길을 찾아 무엇하리.
해 지고 날 저물도록
방문을 걸어 닫고
잠꼬대처럼 독경이나 일삼다
향불처럼 사위어 가리.
어느 날
바람처럼 떠돌던 객승 寂音이
한 철을 살던 곳
통음을 일삼던 그가
길을 잃고 속퇴했던
벼랑 끝의 거처.
이 가을 누가 있어
내게 암자 한 채를 내어준다면
나는 외청량사 무위당에 가서
한 철을 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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