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이야기 - (18) 코끼리와 소와 양을 잡아 제사 지내도

코끼리와 소와 양을 잡아 제사 지내도 - 법정스님

 

그 옛날에 화묵이라는 왕이 있었다. 그 어리석은 완은 바라문과 무당을 섬겼고, 생물을 죽여 제사 지내는 것을 떳떳한 일로 삼앗다.

 

 그런데 왕의 어머니가 중병에 걸려 앓게 되었다. 왕은 이름난 의사들을 불러 치료케 하고, 무당들을 시켜 굿을 하며, 기도를 올리도록 했으나 병은 날로 더해만 갔다. 그러자 어느 날은 나라 안에 있는 2백 명의 바라문을 궁중에 모셔 음식을 대접하고 나서 말했다.

 

 "우리 어머님께서 오랫동안 병으로 고생하고 계시는데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습니다. 바라문께서는 자식이 많아 하늘과 땅의 운행과 별자리 보는 법을 훤히 알고 계실 테니 어떤 잘못이 있어 우리 어머니에게 그런 불행이 오래도록 머무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바라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별들이 뒤섞여 음양이 고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떤 방법을 쓰면 병을 낫게 할 수 있을까요?"

 "성 밖의 평탄하고 정갈한 곳에 제단을 차려, 네 산과 해와 달과 별들에 제사 지내고, 백마리의 짐승과 어린아이 하나를 죽여 하늘에 제사 지내되, 왕께서 몸소 어머님을 모시고 제단 앞에 꿇어앉아 절하면서 오래 사시라고 비십니다. 그렇게 하면 병이 나을 것입니다."

 

 왕은 그 말대로 준비를 서둘렀다. 어린아이 하나와 코끼리, 말, 소, 양 등 백마리의 짐승을 제단으로 몰고 갈 때, 그 길에는 온통 슬픈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부처님의 큰 자비는 악하고 어리석은 바라문과 왕의 소행을 살피시고는, 죽음으로 끌려가는 중생들을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어찌 이처럼 많은 목숨을 희생시켜야 한단 말인가?'

 

 부처님은 급히 제자들을 거느리고 그 나라로 가셨다. 성 밖에서 바라문과 왕에게 몰려 슬피 울면서 지나가는 어린아이와 짐승들을 만났다.

 부처님과 제자들을 보자 왕은 수레에서 내려 파라솔을 물리치고 부처님께 절한 후 문안을 드렸다. 그리고 그날 올릴 제사의 내력에 대해서 사뢰었다.

 부처님은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곡식을 얻으려면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 하고, 큰 부자가 되려면 널리 베풀어야 하며, 오래 살려면 큰 자비를 펴야 하고, 지혜를 얻으려면 배우고 물어야 합니다. 이 네가지 일을 할 때는 그 뿌린 것을 때라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무릇 부귀한 자는 가난한 이의 음식을 탐하지 않는 법입니다. 저 하늘天神들은 칠보로 궁전을 이루었고 옷과 음식은 저절로 생기는데 어찌 감로의 음식을 마다하고 하필이면 부정한 음식을 먹으러 오겠습니까? 사악한 짓을 바르다 하고, 무수한 목숨을 죽여 한 목숨을 구하려고 한들 어찌 그 소원이 이루워 지겠습니까?"

 부처님은 계송을 흞으셨다.

 

     사람이 백 년 동안 오래 살면서

     천하의 귀신을 부지런히 섬기며

     코끼리와 소와 양으로 제사를 지내도

     한 번 자비를 베푼 것만 못하네

 

 부처님의 이와 같은 설법을 듣고 왕은 어리석음의 구름에서 벗어났고, 앓던 병자는 몸과 마음이 상쾌해져 병상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2백 명의 바라문들도 바른 가르침을 듣고는 부끄러워하며 허물을 뉘우쳐 부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했다. 부처님은 그들을 모두 받아들였다.

                                                                                                                                            ㅡ<법구비유경>자인품

 

 사람의 목숨이나 짐승의 목숨은 그 본바탕이 결코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인간 중심의 사랑에는 이런 모순이 따른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인간 중심의 사랑에서 생명 본위의 사랑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연보호운동이 널리 번졌을 때조차, 서울 거리에서는 한동안 보이지 않던 새 잡는 그물과 참새를 구워서 파는 집이 날로 늘어났었다. 먹을 것도 많은데 굳이 어린 새를 잡아먹다니, 새들 보기가 참으로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하기야 자기 집에서 기르던 개까지 잡아먹는 풍습이 남아 있는 형편이니, 더 말한들 소용없는 일이지만,

 용서하라, 사람에게 잡아먹히는 무수한 동물들이여,

 사람들의 분별없는 식욕을 용서하라.

 너희가 오늘날의 사람보다는 몇 갑절 더 너그러우니 인정사정없는 이 사람들을 용서하라. ......................P94~95~96~97~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