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또 들어 성인의 지혜를 이룬다
슈라바스티에 수닷타라는 덕망 높은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호시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부모님의 가르침이나 의술 같은 것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때 호시가 중병에 걸려 몸져눕고 말았다.
친척과 친구들이 병문안을 올 때마다 의사에게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권했지만, 그는 한사코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해와 달을 섬기며 왕에게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할 뿐이다. 이대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뜻을 절대로 굽히지 않을 것이다."
하루는 수닷타가 그를 찾아가 말했다.
"내가 섬기는 스승은 세존이라 하는데, 그분은 신의 공덕을 널리 입히므로 만나는 사람마다 복을 받는다네. 한번 시험 삼아 그 어른을 청해다 법을 듣고, 자네의 뜻이 이루워지기를 빌어 보는 것이 어떨까. 그분을 섬기거나 섬기지 않는 것은 자네 마음에 달렸으니 달리 마음 쓸 건 없네. 자네의 병이 오래되어 낫지 않기에 내가 권하는 것이라네."
며칠이 지난 후 병든 친구가 수닷타를 불러 말했다.
"자네가 나를 위해 세존과 그 제자들을 청해 주기 바라네."
구다타는 곧 부처님과 스님들을 청했다. 부처님이 호시의 집에 이르자 밝은 광명이 온 집 안에 두루 비쳤다. 호시가 이 광명을 보는 순간, 마음이 기쁘고 몸은 가벼워졌다. 부처님은 자리에 앉아 호시를 위로했다.
호시는 부처님께 사뢰었다.
"저는 해와 달을 섬기고 왕과 조상들을 공경하면서 항상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하고 부정한 일을 멀리하려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와 덕을 입지 못했음인지 아직도 병을 앓고 있습니다. 약이나 침 또는 뜸 같은 것은 아예 문 안에조차 들이지 못하게 했으며, 경전이나 계율의 복덕에 대해서는 본래부터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저희 조상 때부터 지켜 오던 일이므로 이렇게 살다가 죽을까 합니다."
부처님은 호사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세상을 살다가 뜻밖의 불행한 사고로 죽는 데는 세가지 이유가 있소. 병들어 있으면서도 그것을 치료하지 않는 것이 그 첫째이고, 치료는 하면서도 환자로서 삼갈 것을 삼가지 않는 것이 그 둘째이며, 교만하고 방자함으로써 거스르고 따름을 알지 못하는 것이 그 셋째 이유요.
이와 같은 사람의 병은 해와 달이나 국왕, 또는 조상과 부모가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오. 밝은 도리로써 시간을 다라 차근 차근 고쳐야 하오. 그 도리란 추위와 더위에서 온 병은 의약으로 고치고, 삿된 일과 악귀로 말미암아 생긴 병은 경전과 청정한 계율로 고치며, 어진 사람을 섬김으로써 얻은 자비심으로 빈궁과 재난을 구제하는 것이오.
그와 같은 덕은 천지신명을 감동시켜 많은 사람을 복되게 하고, 큰 지혜로 번뇌 망상을 없애 준다오. 이와 같이 행하면 현세에서 평안하고 복을 얻어 뜻밖의 재난을 당하는 일도 없을 것이오."
부처님은 다시 계송으로 말씀하셨다.
해를 섬기는 것은 밝기 때문이요
부모를 섬기는 것은 은혜 때문이며
국왕을 섬기는 것은 권력 때문이고
도인을 섬기는 것은 가르침을 듣기 위해서다
건강을 위해 의사를 섬기고
이기기 위해 세력에 기댄다
법은 지혜 있는 곳에 있고
복을 지으면 세상에 빛난다
벗을 사귀는 것은 일을 위해서요
친구와 헤어지는 것은 급한 때이며
아내를 바라보는 것은 사랑을 위함이니
밝은 지혜는 설법 안에 있다
스승은 중생을 위해 법을 펴나니
의문을 풀어 지혜를 얻게 하고
청정한 행동의 근본을 깨우쳐서
법의 보배를 받아 지니게 한다
많은 들음은 현세의 이익
아내와 자식 형제와 친구를 잊게 하고
후세의 복을 가져오나니
듣고 또 들어 성인의 지혜를 이룬다
지혜는 근심과 걱정을 흩어 버리고
상서롭지 못한 쇠망을 없애나니
안온한 행복을 얻으려고 하면
많이 들은 사람을 따라야 한다
호시는 이와 같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의심의 구름이 맑게 걷혔다. 지혜로운 의사의 치료를 받고 도의 덕에 의지하니, 몸이 편하고 온갖 근심 걱정이 사라져 감로수를 마신 것 같았다. -<법구비유경>다문품
남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들을 때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요즘처럼 저마다 자기 말과 주장만을 내세우는 세태 속에서는 단절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이 깨지는 이유도 사람들이 남의 말을 진심으로 듣지 않거나, 건너오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듣는다는 것은 바깥 것을 매개로 자기 안에 잠들어 있는 소리를 깨우는 일이다.
귀 기울여 들을 줄 아는 사람은 그 말에서 자기 존재를 발견한다. 그러나 자기 말만을 내세우는 사람은 자신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미하엘 엔데의 동화<모모>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별들이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남한테 전하려면 그것에 필요한 말이 우리 안에서 먼저 자라야 한다."
'말'이 되기까지는 우리들 안에서 씨앗처럼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듣는다는 것은 곧 자기 것을 비우기 위해 침묵을 익히는 기간이다. 침묵 속에서 자란 성인들이 말은 솔직하고 단순하다. 그렇기 때문에 복잡한 의식 속에서 메말라 가는 사람들의 뜰을 되살려 준다. 이래서 부처님을 가리켜 의왕醫王 또는 법왕法王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P81~82~83~84~85~86
'▒▒▒마음의산책 ▒ > 법정스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연 이야기 - (18) 코끼리와 소와 양을 잡아 제사 지내도 (0) | 2013.12.02 |
---|---|
인연 이야기 - (17) 불살생의 공덕 (0) | 2013.12.01 |
인연 이야기 - (15) 대낮에 횃불을 들고 다니는 바라문 (0) | 2013.11.29 |
인연 이야기 - (14) 어리석은 사람과 짝하지 말라 (0) | 2013.11.28 |
인연 이야기 - (13) 도를 얻기 위해 음경을 끊으려던 비구 (0) | 2013.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