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을 보며 - 서정주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 까지야 다 가릴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가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엔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풀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것이다. .............................................P55
*무등: 호남 광주의 산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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