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산책 ▒/미당 서정주

질마재로 돌아가다 - [32] 무등을 보며

나무향(그린) 2013. 8. 16. 05:59
무등을 보며 - 서정주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 까지야 다 가릴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가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엔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풀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것이다. .............................................P55

 

*무등: 호남 광주의 산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