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갑의 박사학위와 노모 - 서정주
나는 무에 두루 늦기만 한 운수라
삼십 년을 대학에서 강의하고도
환갑에도 그 흔한 박사도 목했는데
진갑에사 그게 하나 차례는 왔네만
내가 이미 중성도 넘게 여성적이 다 되어 그런지
숙명여자대학교란 데서 겨우 하나
그걸 얻게 되었네.
'이 세상에서 이걸 제일 좋아할 이가 누굴까'고
고것을 가만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그건 갓 구십의 내 편모片母일 것이어서
난생 첨으로 한번 효도도 해볼 겸
보제기에 그 박사 모자와 가운을 싸들고
어머니 앞에 가서 그걸 한번 쓰고 입어 보이고,
또 그걸 어머니께도 씌워 드리고 입혀 드렸네.
그랬더니 어머니는 내겐 처음의 존대말로
"우리 서박사님 어서 오시오" 하시었네.
시인이 무엇인지는 전혀 모르면서도
박사라는 그것은 어찌 들어 아셨는지
"우리 우리 서박사님이요" 하시며 무척 좋아 하셨네.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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