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결혼 - 서정주
"우물가에서 김칫거리를 씻고 있는 그애를
사랑방에서 생솔가지 울타리 사이로 보아하니
어덯게나 찬찬하고 고부라져 씻는지
어덯게나 거듭거듭 깻끗이는 씻는지
그만하면 쓰겠어서 정혼해 버렸다.
그러니 아뭇소리 말고 장가들 작정을 해라"
내 아버지는 내 안 가음을 이렇게 고르셔서,
그것이 맞나 안 맞나를 점치기 위해
나는 화투로 패를 한번 떼어 봤더니
공산空山 넉장도 자알 맞아 떨어지고,
홍사리 넉 장도 자알 맞아 떨어져노라.
공산달은 님이요,홍싸리는 뚜쟁이니,
이 색시를 얻으라는 괘가 분명했노라.
국화 넉 장 술이니, 단풍 넉 장 근심도
한꺼번에 떨어지긴 떨어졌지만
이거야 어디서나 재기중在其中인 것이고······
하여, 장가드는 날 나귀 등에서 느껴 보자니
과학이니 연애결혼이니 무어니 보다도
요것이 아무래도 상급생만 같았노라. ...........................................P36
*나의 이 결혼식은 1938년 3월, 즉 내 나이 스물세 살 때 첫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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