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산책 ▒/미당 서정주

질마재로 돌아가다 - [15] 넝마주이가 되어

나무향(그린) 2013. 7. 31. 05:51
넝마주이가 되어 - 서정주

 

열여덟 살 때 가을에 나는 한 넝마주이가 되어

무거운 구덕을 등에다 메고

서울의 쓰레기통들을 뒤지고 다녔네.

 

하루종일 주운 걸 팔아도

이십 전밖에 안 되는 날은

아침은 오 전짜리 시래기국밥,

점심도 오 전짜리 호떡 한 개,

저녁만 제일 비싼 십 전짜리 밥을 사 먹었네.

 

정동의 영국 공관 뒤 풀밭에서 쉬노라니,

분홍빛 장미 같은 앵키 소녀가 지나가며

유심히 보고는 얕잡아 외면하는 눈초리,

그것에는 부끄럼도 화끈히 솟으며······

 

그래도 일본인 집 쓰레기통에서는

쓰다 버린 그 유담뿌라는 것도 하나 주워서

범부 선생에게 선사도 했었지.

 

범부는 그걸 받고 시를 하나 썼는데

'······쓰레기통 기대어 앓는 잠꼬대를

피리 소리는 갈수록 자지러져·····'

그런 구절도 끼어 있었네. .....................................P33-34

 

*유담뿌:일본인들이 그들의 온돌 아닌 냉방에서 잘 때 더운 물을 담아서 안고자는 용기.

*범부 선생:소설가 김동리 씨의 큰형님. 나이는 동리나 나의 아버지뻘이 되던 분으로 지금은 고인니지만 동양사상에 정통한 철인이었다. 물론 나는 이 넝마주이 행각도 그 불성실한 것이 자각되자 사흘 만에 이내 치워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