넝마주이가 되어 - 서정주
열여덟 살 때 가을에 나는 한 넝마주이가 되어
무거운 구덕을 등에다 메고
서울의 쓰레기통들을 뒤지고 다녔네.
하루종일 주운 걸 팔아도
이십 전밖에 안 되는 날은
아침은 오 전짜리 시래기국밥,
점심도 오 전짜리 호떡 한 개,
저녁만 제일 비싼 십 전짜리 밥을 사 먹었네.
정동의 영국 공관 뒤 풀밭에서 쉬노라니,
분홍빛 장미 같은 앵키 소녀가 지나가며
유심히 보고는 얕잡아 외면하는 눈초리,
그것에는 부끄럼도 화끈히 솟으며······
그래도 일본인 집 쓰레기통에서는
쓰다 버린 그 유담뿌라는 것도 하나 주워서
범부 선생에게 선사도 했었지.
범부는 그걸 받고 시를 하나 썼는데
'······쓰레기통 기대어 앓는 잠꼬대를
피리 소리는 갈수록 자지러져·····'
그런 구절도 끼어 있었네. .....................................P33-34
*유담뿌:일본인들이 그들의 온돌 아닌 냉방에서 잘 때 더운 물을 담아서 안고자는 용기.
*범부 선생:소설가 김동리 씨의 큰형님. 나이는 동리나 나의 아버지뻘이 되던 분으로 지금은 고인니지만 동양사상에 정통한 철인이었다. 물론 나는 이 넝마주이 행각도 그 불성실한 것이 자각되자 사흘 만에 이내 치워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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