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앞에서 - 이해인
보이지 않기에
더욱 깊은
땅속 어둠
뿌리에서
줄기와 가지
꽃잎에 이르기까지
먼 길을 걸어온
어여쁜 봄이
마침내 여기 앉아 있네
뼛속 깊이 춥다고 신음하며
죽어가는 이가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하던
희디흰 봄 햇살도
꽃잎 속에 접혀 있네
해마다
첫사랑의 애틋함으로
제일 먼저 매화 끝에
피어나는 나의 봄
눈 속에 묻어두었던
이별의 슬픔도
문득 새가 되어 날아오네
꽃나무 앞에 서면
갈 곳 없는 바람도
ㄸ다스하여라
'살아갈수록 겨울은 길고
봄이 짧더라도 열심히 살 거란다
그래, 알고 있어
편하게만 살 순 없지
매화도 내게 그렇게 말했단다'
눈이 맑은 소꿉동무에게
오늘은 향기 나는 편지를 쓸까
매화는 기어이
보드라운 꽃술처럼 숨겨두려면
눈물 한 방울 내 가슴에 떨어뜨리네..................p58-59
▽ 이해인 수녀님 계단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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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서원을 하고 나서 나는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로 파견되어 경리과 보조 일을 하게 되었다. 이 시절 늘 숫자와 씨름하다보니 갑자기 눈이 나빠져서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이 무렵 스위스인인 야누아리아 원장 수녀님(1998년 작고)의 배려로 <소년>지에 동시 3편으로 추천 완료를 받았고 연세대에서 영어 공부도 시작하였다. 당시 <소년> 편집장이었던 검돌 이석현 선생(현재 캐나다 거주)은 나의 글쓰기에 많은 지지를 보내 주셨다. 일터의 사무처장이었던 김남수 주교님께서 두꺼운 노트 한 권을 주시며 시를 많이 쓰라고 격려해 주셨고 나는 이 노트 위에 그동안 쓴 100여 편의 글들을 정리해 내 나름대로 <민들레의 노래>라는 제목을 부쳐 두고 가끔 혼자서 꺼내 보며 즐거워하곤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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