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산책 ▒/이해인수녀님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 (28) 매화 앞에서 / 이해인 수녀님 계단오르기-6

나무향(그린) 2011. 7. 5. 06:44

매화 앞에서 - 이해인

 

보이지 않기에

더욱 깊은

땅속 어둠

뿌리에서

줄기와 가지

꽃잎에 이르기까지

먼 길을 걸어온

어여쁜 봄이

마침내 여기 앉아 있네

 

뼛속 깊이 춥다고 신음하며

죽어가는 이가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하던

희디흰 봄 햇살도

꽃잎 속에 접혀 있네

 

해마다

첫사랑의 애틋함으로

제일 먼저 매화 끝에

피어나는 나의 봄

 

눈 속에 묻어두었던

이별의 슬픔도

문득 새가 되어 날아오네

꽃나무 앞에 서면

갈 곳 없는 바람도

ㄸ다스하여라

 

'살아갈수록 겨울은 길고

봄이 짧더라도 열심히 살 거란다

그래, 알고 있어

편하게만 살 순 없지

매화도 내게 그렇게 말했단다'

눈이 맑은 소꿉동무에게

오늘은 향기 나는 편지를 쓸까

 

매화는 기어이

보드라운 꽃술처럼 숨겨두려면

눈물 한 방울 내 가슴에 떨어뜨리네..................p58-59

 

 ▽ 이해인 수녀님 계단오르기

 


첫 서원을 하고 나서 나는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로 파견되어 경리과 보조 일을 하게 되었다. 이 시절 늘 숫자와 씨름하다보니 갑자기 눈이 나빠져서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이 무렵 스위스인인 야누아리아 원장 수녀님(1998년 작고)의 배려로 <소년>지에 동시 3편으로 추천 완료를 받았고 연세대에서 영어 공부도 시작하였다.

당시 <소년> 편집장이었던 검돌 이석현 선생(현재 캐나다 거주)은 나의 글쓰기에 많은 지지를 보내 주셨다. 일터의 사무처장이었던 김남수 주교님께서 두꺼운 노트 한 권을 주시며 시를 많이 쓰라고 격려해 주셨고 나는 이 노트 위에 그동안 쓴 100여 편의 글들을 정리해 내 나름대로 <민들레의 노래>라는 제목을 부쳐 두고 가끔 혼자서 꺼내 보며 즐거워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