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산책 ▒/류시화 엮음 75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 [56] 당신의 손에 할 일이 있기를

당신의 손에 할 일이 있기를 당신 손에 언제나 할 일이 있기를. 당신 지갑에 언제나 한두 개의 동전이 남아 있기를. 당신 발 앞에 언제나 길이 나타나기를. 바람은 언제나 당신 등 뒤에서 불고 당신의 얼굴에는 해가 비치기를. 이다금 당신의 길에 비가 내리더라도 곧 무지개가 뜨기를. 불..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 [54] 사막의 지혜

사막의 지혜 강이 있었다. 그 강은 머나면 산에서 시작해 마을과 들판을 지나 마침내 사막에 이르렀다. 강은 곧 알게 되었다. 사막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자신의 존재가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그때 사막 한가운데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이 사막을 건널 수 있듯이 강물도 건널 수..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 [53] 회교 사원에 씌어진 시

회교 사원에 씌어진 시 구차하게 사느니 죽음을 택하라. 남의 비위를 맞추느니 적은 것에 만족하라. 어차피 자신의 것이 아니면 어떤 방법을 써도 자신의 것이 되지 않을 터. 운명에는 이틀이 있다. 하루는 당신의 편, 다른 하루는 당신에게 등을 돌리리라. 그러므로 운명이 자신의 편일 ..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 [51] 예수가 인터넷을 사용했는가

예수가 인터넷을 사용했는가 산상수은을 설파하기 위해 예수가 인터넷을 사용했는가. 자신의 복음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예수가 스팸 메일을 사용했는가. 사도 바울은 성능 좋은 메모리와 업 버전을 사용했는가. 그의 편지들은 바울@로마.컴이라는 이메일 명으로 성경 게시판에 올려졌..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 [50]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언제나 식기 전에 밥을 먹었었다. 얼룩 묻은 옷을 입은 적도 없었고 전화로 조용히 대화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원하는 만큼 잠을 잘 수 있었고 늦도록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날마다 머리를 빗고 화장을 했다. 날..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 [49] 태초에 여자가 있었으니

태초에 여자가 있었으니 첫째날,내가 추위에 몸을 떨며 캄캄한 암흑 속으로 나아가 잔가지들을 주워 모아 모닥불을 피웠을 때 그분께서 덜덜 떨며 동굴 밖으로 나와 모닥불에 손을 쬐면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 하셨다. 둘째날, 내가 새벽부터 일어나 강에서 물을 길어다가 그분의 ..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 [48] 선택의 가능성들

선택의 가능성들 영화를 더 좋아한다. 강가의 떡갈나무들을 더 좋아한다. 인류를 사랑하는 자신보다 인간을 사랑하는 자신을 더 좋아한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실이 꿰어진 바늘을 갖고 다니는 것을 더 좋아한다. 초록색을 더 좋아한다. 모든 것을 비난하는 것이 곧 이성적인 판단이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 [46] 세레를 위한 시

세레를 위한 시 물속으로 들어가라. 물이 네 갈증을 달래 줄 테니, 네 삶의 흐름 속으로 너를 데려다 줄 테니, 불을 꿈꾸라 불이 네 몸을 겁혀 줄테니, 불꽃이 네 영혼에 빛을 비출 테니, 별들을 바라보라, 성운들이 네 안에서 돌고 있는 원자들처럼 끝없이 회전할 테니. 나무에 대해 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