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권무심재

슬픈것이 흘러가는 시간이다 - (56) 가슴을 울리는 겨울 산사의 풍경 속에서(청량사에서)

나무향(그린) 2018. 4. 8. 05:41

 

 

가슴을 울리는 겨울 산사의 풍경 속에서 / 이형권

-청량사에서

 

겨울 산사는 텅 비어 있는 듯합니다.

눈 쌓인 산자락에는 창백한 낯빛의 하늘이 걸려 있고

전각들은 모두 문을 닫고 고요 속에 웅크려 있습니다.

 

응달을 지나온 바람 소리가 허전한 마음을 스치고 가면

세상의 모든 자리가 허공처럼 텅 비어 있습니다.

겨울 산사의 매력은 이 텅 비어 있음에 있습니다.

 

수목들은 잎을 떨쳐 낸 앙상한 가지로 서 있고

시냇물 소리도 청빈한 수행자처럼 야위었습니다.

모두가 시련의 세월 속에서 내면을 들여다보는 결제의 시간인 것입니다.

 

그 적막한 풍경 속에서 처마 끝에 우는 풍경 소리는

더욱 명징해지고 적설을 이기지 못한 설해목雪解木 한 가지가

또다시 우지끈 부러져 내립니다.

 

지난 계절 분주했던 인파는 보이지 않고

산사의 뜨락에는 오로지 적요만이 깃들어 있습니다.

 

스님들은 풀리지 않는 화두를 들고 아득한 시간의 어귀를 서성이고

지나가는 길손의 발자국이 잠시 산사의 적막을 일으켜 세워

면회를 하고 갑니다. 하여 겨울 산사를 찾아가는 길은

자신을 향해 떠나는 여행이라 불러도 좋습니다.

 

세상의 시간으로부터 단절된 곳에서 고독한 영혼이 절벽처럼 서 있고

높은 사유의 정수리가 빛을 뿜어내며 새벽 공기처럼 살아 있습니다.

 

꽃이 피고 달이 뜨는 낙화유수의 시간 속에서

윤회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 길손이 머리 조아릴 때

텅 비어 있는 겨울 산사는 온전히 수행자의 도량이 됩니다.

 

속인이건 구도자이건 가난한 순례자이건

가장 진실한 시간 속에 그들의 영혼들을 불러 세우고

성성히 깨어 있게 합니다.

 

그 깨어 있는 시간을 향해 우리는 겨울 산사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