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군사혁명과 나 - 서정주
4·19 학생들의 피의 덕택으로 생긴
'민주당' 1년쯤의 각종 혼란 자유 시절이 끝나고 1961년 5월 16일에는
박정희 소장의 군사혁명이 성공했는데,
그로부터 사흘 뒤인 5월 19일 아침
나는 집에서 동국대학교에 강의를 나가려고 책가방을 챙기고 있다가
문득 들이닥친 사복 형사들에게 끌리어 중부 경찰서행을 하시게 되었네.
왜 이러시느냐니까
"잠시 증언을 받을 일이 있어서요"였는데.
이대 중부서의 임시 서장이라는 대위 건장의 청년 앞에 가 섰더니
"당신까지가 설마 그럴 줄 몰랐소!"
대단히 노한 소리 한마디를 퍼붓곤
"데려다가 집어 넣어 버려!"여서
뭐라고 따져 볼 겨를도 없이
눈깜짝 사이에 덜커덕 구치소 신세가 되고 말았네.
이 바닥은 어딜 가건 역시나 좁은 곳이라,
내가 들어간 그런 방에도 또한 구면은 끼어 있었으니,
일본 게이오慶應대학에서 영문학을 하고
헤밍웨이를 번역하면서 내게 시 추천을 바래 드나들던
미남 허군이 나를 보고 반색하여
옆에 와서 내 손목을 붙들어 잡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가 밤이 이슥했을 때
"여기 갇힌 몇 사람은 사형될 것이라고 허데예"하고
그의 경상도 사투리로 나직이 소곤거려 주는 데는 딱 질색이었네.
그 몇사람은 누구누구냐니까
깡패 두목 이정재, 혁신파 신문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
또 그 주간 송지영이가 다 이 속에 들어와 있는데 그들은 아마도 위험할 거라는 이야기였네.
나야 아직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끌려와 있는 신세이긴 해도
'이건 정말 지독한 함정에 빠졌구나' 하는 느낌 때문에
뼛속까지가 그저 아찔키만 할 따름이었지.
처음 며칠 동안은 아무 조사도 없이
이 구치소 방에 굳어진 채 우두머니 갇히어만 있었는데,
"저것들 언제 빵해 버릴 줄도 모르고
쌔근쌔근 자고 있는 걸 보면 가엾기도 해······"
간수경관들이 새벽녘에 쑥덕거리는 때면
내마음은 어디에다가도 붙일 곳이 없기만 했네.
"장면이파 군인들이 어디선가는 박정희파하고 전투하고 있다고도 하는데,
이게 심해지면
우리들은 끌어내다가 모조리 두루루 해버릴 거라고도 해······"
이렇게 소곤거리는 동숙자의 소리도 들려서
내 마음은 그저 불교의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그 선禪 하나나 의지할밖엔
별 딴수가 없었네.
아, 그러신데 말씀야,
어느 날 오후 그 서장 대위에게 불려 나가서 들어 보니
내가 끌려온 이유는
내가 민주당 정부 때의 혁신과 교수단의 위원이었던 때문이라는 거야.
내가 그 위원을 승락한 사실이 없기에 그걸 말해도 그럼 그 단장 조윤제와 그 사무국장이 검거되어
그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
기다리면서 수도나 해 보라는 것이었네.
하여 그 혁신과 교수단 사무국장이란 사람이 붙잡혀 내 무죄가 입증될 때까지
나는 한 보름 동안 그 불교적 수도라는 걸 더 하고 지냈는데,
그 서장 대위가 오해를 풀고
설렁탕을 한 그릇 시켜 놓고
비로소 웃으면서 실토하는 소리를 들어 보니
이 사람이 한때의 내 친구 최문환 교수의 누이의 아들이더군.
"국학대학이란 데까지 강의 품팔이 같이 다닐 때에는
합승값은 최교수가 내 것까지 낸 적이 많았지"하며 나도 팔자가 한번 좋아져 있었지.
단풍보다 더 고운 눈발이 치고
금강산 뼈다귀들은
물론 힘이 더 생겨났었지. .....................................P131~134
'▒▒▒마음의산책 ▒ > 미당 서정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질마재로 돌아가다 - [89] 낙락장송의 솔잎 송이들 (0) | 2013.10.12 |
---|---|
질마재로 돌아가다 - [88] 일본 산들의 의미 (0) | 2013.10.11 |
질마재로 돌아가다 - [86] 4·19 바람 (0) | 2013.10.09 |
질마재로 돌아가다 - [85] 차남 윤潤 출생의 힘을 입어 (0) | 2013.10.08 |
질마재로 돌아가다 - [84] 아버지 돌아가시고 (0) | 2013.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