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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마재로 돌아가다 - [85] 차남 윤潤 출생의 힘을 입어

나무향(그린) 2013. 10. 8. 06:33

차남 윤潤 출생의 힘을 입어 - 서정주

 

1956년 4월이던가. 별일도 없는 어느날 밤에

"나 아이를 가졌어요. 어떻게 하지요?" 아내가 내게 물어서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 낳아서 잘 길러 봐야지"

대답할 수 없었던 게

하늘이 우리 부부에게 복을 주실 장본이 되었던 걸

이때엔 우리는 물론 미처 모르고 있었다.

하늘이 합하여 마련해 준 사람의 씨를

어떤 가난 어떤 곤경 속에서라도

반대 않고 받아서 잘 길러내는 것이 온갖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을

내 나이 42세의 이때만 해도 나는 까마득히 잘은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1957년 2월 4일

그 아이 윤이 태어나고부터

우리집 살림은 서서히 자리가 잡히어

부부 사이의 이해도 더 늘어나고

내 직장의 인내력도 배가하게 되고    

저축도 한 푼 두 푼 더 모으게 되고 하여

말하자면 그 '착실한 살림꾼'의 길로 접어들긴 했으나

이게 이 현실을 사는 사람의 복의 입구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둘때이자 막내아들인 이 아이가 자라며

우리말을 익히고 있는 걸 보고 있다가

나는 이 아이가 크며 읽을 독서 범위도 생각하게 되고

우리말로 번역된 문명국들의 책이 아직도 너무 적은 것도 생각하게 되고

 

하여 나도 눈에 새로운 불을 켜고

그 덕으로 서양 현대시들의 좋은 걸 재음미도 하게 되었으니

 

이 어찌 이것을 '복 아니라'고 하겠는가?

내 아내 본향本鄕도, 내 큰자식 승해도

나의 이 신新기풍에는 신바람을 내 동조해 주시어 나도 이때부터 10여 년 간을

영·불어 독서력의 재수를 비롯해 독·노어와 라틴어 희랍어의 초보에까지

대학 강의하고 남는 시간 거의 전부를 잠기어 지내게도 만들어 주었다.

 

그나 그뿐인가?

이러한 몰입은

내 음주 유랑의 행려병사의 위험을 막아 주었음은 물론,

유혹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닌

삼재 팔난의 원동력- 그 여난이란 것에서까지도 적당히는 막아주었느니,

'사내가 부득이하면

오입도 아조 피하긴 어렵겠지만

이것도 집안이 망가지지 않을 정도로

극히 조심해서 치러내야 한다'는

절충식인 한 개의 방안족이 된 것도 이 10여 년 동안의 일이다.

 

거짓없이 말했으니

아직 이때의 나만큼도 되지 못해 고민하고 있는 남자 동포가 있다면

잘 참고해 주시기 바란다.

 

하늘이 특별히 마음을 쓰시어

큰자식 낳은 지 17년 남아 만에 내게 마련해 주신

내 막내자식 윤의 출생과 성장을 잘 맡기로 한 덕은

아직도 그 큰 것이 또 두 개나 남아 있으니

이 아이를 기르며 집안을 이루어 나가기에 골몰한 나머지

자유당 말기의 혼란이나

4·19와 짧은 민주당 시절의 법석

또 5·16 군사혁명, 기타의

어느 과도기적 난세의 싼거리 희생에서도 멀리

내 자신의 공부와 시인 작업과

가족의 발전을 꾀할 수 있었던 게 그 첫째이고,

그 둘째는, 그렇지

아들들의 오랜 공부의 학자를 대는 책임자로서

'어떻게라도 해서 더 오래 살아 있어야겠다는'

그 의지 하나로 자기 건강도 적당히 지켜내다가 보니

또 자연히 내 수명이라는 것 그것마저도

어쩔 수 없이 연장하게 된 점이다.

하늘에 공손히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다. ................................................P123~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