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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마재로 돌아가다 - [84]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무향(그린) 2013. 10. 7. 05:58

아버지 돌아가시고 - 서정주

 

 1942년 8월, 내 출생지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에서

만년을 은거하시던 내 아버지가 58세로 돌아가시었는데,

한마디의 유언도 없이, 앓는 소리도 없이, 붉은 웃수염 끝을 잠깐 만져 보시고는

긴 여행길의 나그네 소년이 잠시 한잠 붙이듯

스르르 눈을 감으며 숨을 거두시었다.

아버지도 고질의 장출혈로 돌아가셨고,

나도 지금껏 그 병을 유전으로 이러 가지고 있으니

내 임종의 꼴도 아마 이 비슷할 것이다.

나는 붉은 수염이 아니니 이것 하나나 다를 것이다.

 

 아버지가 일생 벌어 내게 남긴 유산은

이곳 선운리 모시밭 2,30마지기에

심원면이라는 곳에 여기저기 사두신 전답 이,삼십 마지기에

생명보험료 일금 일천 원야.

 

 그러나 재물에는 자고로 언제나 왁자한 말썽도 붙는 것이라

심원면의 콩밭 몇 마지기 때문에는

재판소에도 귀찮게 끌려나가야 했고,

또 그 후렴의 시로는 그 원수에게서 숭어회도 좀 얻어먹어야만 했다.

 

 청년 시절에 굶주려 밤에 남의 소를 훔쳤다가 징역살이하는 동안에 마누라를 뺏긴 김억만씨는

풀리자 마누라도 되찾아 괜찮게 살고 계셨는데

이 분이 내 아버지에게서 밭을 샀다고 그 이전 독촉 소송을 걸어왔고

내 어머니의 기억으론 그런 일은 전연 없다고 하시여

전주 지방법원 정읍 지청에서 재판에 걸렸는 바

조사해 보니 김억만 씨가 그 계약서와 내 아버지 도장을 위조한 게 판명되어

할 수 없이 또 감옥에 들어가게 된 걸

내가 제소 포기로 용서해 주었더니

감지덕지하여 심원면의 자기 집으로 나를 초대하고

손수 잡아 만들어낸 그 숭어회였네.

환갑 나이의 김억만 씨도 무척은 기뻐했으니

이것도 시는 시지 별것이겠나.

 

 이러구러 기러기 우는 가을은 또 와서,

어느 이슬비 내리는 오후를 나는 우산도 안 쓰고

심원면에서 선운사 입구로 가는 신작로를

어슬렁 어슬렁 축축이 젖어 가고 있었는데,

길가의 실파밭 건너 오막살이 주막이 하나 보여 「

"약주 있오?"하고 들어서니

"예"하며 맞이해 나온 주모는, 뭐라 할까,

나이 40쯤의 꼭 전라도 육자배기 그대로의 여인이었네

"그렇잖아도 오늘은 한번 개봉해 볼까 하는 꽃술이 한 항아리 기대리고 있는디라우"

인사 말씀은 겨우 이것이었으나

그 말씀에 따르는 그 멜로디는 노련하신 육자배기 그대로여서

이거야 정말 김억만 씨 작의 시보다는 한결 더 나은 것 같아.

 

가뭄에 뛰어오르던 잉어 쏘내기에 다시 물에 잠기듯

"합시다"하고 앞장서 방에 쑤욱 들어가서는

물론 그 꽃술 개봉이라는 걸 시키고

그 육자배기 여편네와 함께 눈 깜짝 사이에

그 한 도가니를 온통 다 마셔 버렸네.

"눈 깜짝할 사이"라는 건 물론

 

좀처럼 눈을 깜짝거리지 않는 그런 사람을 표준해서 말씀야.

술도 술도 이렇게 억수로 먹히던 건

내 생애에서도 이것이 최고 정상이었네.

 

그 육자배기 여편네는 술이 얼얼하자

그 한 많은 진짜 육자배기도 나한테 들려주고

작별할 때는 역시나 그 육자배기 멜로디로

"동백꽃이 피거들랑 또 오시오, 인이……."하고

위아래 이빨을 꼭 다붙여 물고

그 사이에서 나오는 "ㄴ"치모음 소리로

그 '인이……"를 세계 으뜸의 매력으로 발음해 주었나니

 

일찍이 하인리히 하이네가

"시악씨 입맞추며 우리 독일말로

"이히 리베 디히……"

그 소리 얼마나 듣기 좋은지

남이야 알라더냐? 했던

그 '이히 리베 디히'보다

몇 갑절은 더 이쁘게 들렸네.

 

그런데 그 뒤 10년이 지낸 1951년의 대 빨치산 전투 때

경관들에게 밥을 지어 먹였다는 죄로

이 여자와 그 가족들은 빨치산에게 학살을 당하고,

그 주막도 불태워져 버리고

뒤에 내가 가보았을 땐 그 실파밭만 남았더군.

그래 나는 그 뒤 선운사의 내 시비에 새긴

"선운사(禪雲寺) 동구(洞口)"라는 시에 그 육자배기 소리를 담아보았지.

 

'선운사禪雲寺 고랑으로

선운사禪雲寺 동백꽃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껏만 상기도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P118-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