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수행자가 히말라야에서 홀로 고행하면서 오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는 아직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기 전이었으므로 부처님의 이름도, 경전이 있다는 말도 듣지 못했다.
그때 인드라는 그 수행자가 과연 부처가 될 자질과 능력이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해 나찰(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악독한 귀신)의 몸으로 변신해 히말라야로 내려왔다. 그리고 수행자가 사는 곳 근처에 서서 과거 부처님이 말씀하신 시의 앞 구절을 외웠다.
이 세상 모든 일은 덧없으니
그것은 곧 나고 죽는 법이라네
이 시를 들은 수행자는 마음속으로 한없이 기쁨을 느꼈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험상궂게 생긴 나찰 말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생각했다.
'저처럼 추악하고 무서운 얼굴을 가진 존재가 어떻게 그런 시를 읊을 수 있을까? 그것은 불 속에서 연꽃이 피고 뜨거운 햇빛 속에서 참물이 흘러 나오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일이다. 혹시나 저것이 전생에 부처님을 뵙고 그 시를 들었을지도.'
수행자는 나찰에게 가서 물었다.
"당신은 어디서 과거 부처님이 말씀하신 시의 앞 구절을 들었습니까? 당신은 어디서 그 여의주 보배의 반쪽을 얻었습니까 그 시를 듣자 마치 망울진 연꽃 봉오리가 활짝 피듯이 내 마음이 열렸습니다."
"나는 그런것은 모르오. 여러 날 굶은 끝에 허기가 져서 아마 헛소리를 했나 보오."
"그런 말씀 마십시오. 당신이 만일 그 시의 뒤구절을 마저 일러 주신다면, 나는 평생을 두고 당신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물질의 보시는 사라질 때가 있지만, 법의 보시는 사라질 수 없습니다."
"당신은 지혜는 있어도 자비심이 없구려. 자기 욕심만 채우려 하지 남의 사정은 모르고 있소. 나는 지금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오."
그러자 수행자가 나찰에게 물었다.
"당신은 대체 어떤 음식을 먹습니까?"
나찰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놀라지 마시오. 내가 먹는 것은 사람의 살덩이이고, 마시는 것은 사람의 따뜻한 피요. 그러나 그것을 구하지 못해 나는 지금 몹시 괴롭소."
"그럼 내게 그 나머지 시를 들려주십시오. 그것을 다 듣고 내가 이 몸뚱아리를 송두리째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나는 이 덧없는 몸을 버려 영원한 몸과 바꾸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누가 당신을 믿겠소. 겨우 반쪽의 시를 듣기 위해 그 소중한 몸을 버리겠다니."
"당신은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질그릇을 주고 칠보로 된 그릇을 얻듯이, 나도 이 덧없는 몸을 버려 금강석과 같은 굳센 몸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게는 많은 증인이 있습니다.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 그것을 증명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똑똑히 들으시오. 나머지 반을 마저 말하겠소."
마침내 나찰은 시의 후반부를 읊었다.
생사의 갈등이 사라지고 나면
모든 것이 열반의 기쁨이어라
수행자는 이 구절을 즏자 더욱 환희심이 솟았다. 시의 뜻을 깊이 생각하고 음미한 뒤에 그 시를 후세에까지 전하기 위해 벼랑과 나무와 돌에 새겼다. 그리고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 뛰어내리려 했다. 그때 나무의 신이 그에게 물었다.
"그 시에는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이 시는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시를 들으려고 몸을 버리는 것은 나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수행자는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세상의 인색한 사람들에게 내가 몸을 버리는 이 광경을 보여 주고 싶다. 조그만 보시로 마음이 교만해진 사람들에게 내가 반 구절의 시를 얻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는 것을 보여 주고 싶구나.'
마침내 그는 몸을 날려 나무에게 떨어졌다. 그런데 그 몸이 땅에 닿기도 전에 나찰은 곧 인드라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공중에서 그를 받아 땅에 내려놓았다. 이때 여러 천신들이 모여 그의 발에 절을 하면서 그토록 지극하게 깨달음의 경지를 구하는 구도의 정신과 서원을 찬탄했다. <대반열반경>
이 이야기는 유명한 설산동자의 설화다. 물론 설산동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 수행자 시절의 이름이다. 반 구절의 시를 얻어듣기 위해 하나뿐인 목숨까지도 기꺼이 희생하는 것을 위법망구, 즉 법을 위해 몸을 돌보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과연 이런 위법망구의 정신이 있는가를 물을 때, 나는 몹시 부끄럽다.
이세상 모든일은 덧없으니
그것은 곧 나고 죽는 법이라네
생사의 갈등이 사라지고 나면
모든 것이 열반의 기쁨이어라
이 시가 <열반경> 사구게이다. 나찰이 수행에게 한 말 가운데
" 당신은 지혜는 있어도 자비심이 없구려." 라고 한 대목에 마음이 간다. 깨달음을 구해 부처가 되려면 지혜만이 아니라 자비심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앞에서도 지적 했듯이, 자비심이 곧 여래이기 때문이다.
법문 한마디를 듣기 위해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버리는 지극한 구도 정신이 마침내 깨달음을 이룬다는 이 구도 설화 앞에서,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한 권의 경전을 얼마나 소홀히 건성으로 대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지 않울 수 없다. 영혼의 양식이 되는 소중한 가르침을 소홀히 하지 말 일이다.....................P44-45-46-47~48-49
인도의 옛이야기에 불교의 숨결을 불어넣은
찬란한 설화문학을 보고,
존재의 속얼굴을 비추는 거울 같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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