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라자그리하(왕사성王舍城)의 죽림정사에 계실 때였다. 어느 날 부처님은 제자들과 함께 성안에 들어가 어떤 사람의 공양을 받고 설법한 뒤 해질 무렵 성을 나오셨다. 그때 마침 길에서 많은 소 떼를 몰고 성안으로 들어가는 한 목동과 마주쳤다. 소들은 살지고 배가 불러 이리저리 뛰거나 서로 떠받으면서 좋아했다. 이 광경을 보고 부처님은 계송을 읊으셨다.
소치는 사람이 막대를 들고
들에 나가 소를 먹이듯이
늙음과 죽음도 또한
사람의 목숨을 기르며 몰고 간다
명문대가의 남자나 여자들
아무리 재산을 쌓고 모아도
망하거나 죽지 않은 자 없었거니
그것은 하나뿐 아니라 백이요 천이더라
한번 태어난 것은 밤이나 낮이나
제 목숨 스스로 깍으면서 가나니
그 목숨 차츰차츰 줄어드는 것
가뭄에 잦아드는 논물 같네
부처님은 제자들과 같이 죽림정사로 돌아와 발을 씻고 자리에 앉으셨다. 제자 아난다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께서는 돌아 오는 길에 세 구절의 계송을 읊으셨는데, 그 뜻을 자세히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너는 어떤 사람이 소 떼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았으리라. 그것은 백정네 소들이다. 본래는 천 마리였는데, 목자와 함께 성 밖으로 보내어 맑은 물과 풀을 먹여 살지게 한 다음 날마다 살진 놈을 골라 잡는다. 지금은 죽은 소가 절반도 넘지만, 다른 소들은 그것도 모르고 서로 떠받고 뛰놀면서 좋아하고 있다. 나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가엾이 여겨 그 계송을 읊은 것이다.
아난다여, 어찌 그 소들뿐이겠느냐.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다. 항상 자기 자신과 소유에 집착해 덧없음을 알지 못하고 오욕락五欲樂, 즉 재산과 색과 음식과 명예와 잠에 빠져 그 몸을 기르고 실컷 쾌락을 누리면서 서로 해치고 죽인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이 아무런 약속도 없이 갑자기 닥쳐오는데도 그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저 소들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ㅡ<법구비유경> 무상품.
죽음은 과일 속에 들어 있는 씨앗처럼 삶과 함께 살아간다. 죽음이라는 한계 상황을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생에 대한 깊은 존경과 성실성도 잃지 않을 것이다.
생명이 지닌 박고 아름답고 선량한 가능성을 일깨우지 않고 자기 한 몸만을 위해 살아간다면, 풀을 뜯다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와 다를 게 무엇이냐는 이 교훈에서, 우리는 새삼스럽지만 '오늘의 나는 무엇인가'를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과연 나는 하루하루를 사람답게 살고 있는가? 내가 지니고 있는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면서 나답게 살고 있는가?
내가 허락받은 목숨은 가뭄으로 잦아드는 논물 같다고 했다........................P54~55~56~57
▲ 인연이야기: 인도의 옛이야기에 불교의 숨결을 불어넣은 찬란한 설화문학을 보고, 존재의 속얼굴을 비추는 거울 같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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