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익은 보리가 들불에 타듯이 - 법정스님
한 바라문에게 딸이 있었는데, 그 소녀는 열다섯의 앳된 나이로 양귀비꽃처럼 아름답고 총명한 데다 말을 거리낌 없이 잘하는 재주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소녀는 몹쓸 병에 걸려 치료도 제대로 받아 보지 못한 채 이내 죽고 말았다. 마치 잘 익은 보리가 들불에 모조리 타 버린 것과 같았다.
아버지인 바라문은 자식의 갑작스런 죽음에 정신을 잃어 마치 미친 사람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바라문은 법을 설해 사람들의 근심을 잊게 하고 걱정을 덜어 주는 성인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 성인을 찾아갔다.
"저는 무남독녀 외동딸 하나만을 믿고 사랑하면서 온갖 근심을 잊은 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애가 갑자기 몹쓸 병에 걸려 저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그 애 일만 생각하면 가엾어 미칠 것 같습니다. 원컨데, 저를 굽어 살피시고 깨우쳐서 이 근심의 매듭에서 풀려나게 해 주십시오."
부처님은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는 오래가지 못하는 네 가지 일이 있소, 항상(영원)하거니 생각하는 것은 반드시 덧없어지고, 부귀는 반드시 가난하고 천해지며, 한번 만난 사람과는 반드시 헤어지고, 건강한 사람도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이오."
그러고 나서 계송을 읊으셨다.
영원하다는 것 모두 다 사라지고
높다는 것은 반드시 낮아지며
모인 것은 뿔뿔이 흩어지고
한번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느니라
바라문은 이 계송을 듣고 곧 마음이 열려 근심과 슬픔의 매듭이 풀렸다. 그리고 머리와 수염을 깍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덧없음無常을 꾸준히 생각하다가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ㅡ<법구비유경>무상품
만나지 말자 헤어지기 괴로우니, 태어나지 말자 죽기 괴로우니……. 그러나 만나고 헤어지고 태어나고 죽는 것이 어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인가. 이러한 인간의 실존을 철저하게 깨달을 수 있다면 크게 상처를 입을 것 같지 않다.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는 역시 어려운 일이다. 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니까. 아라한은 깨달은 성자이다. 그러므로 대접받을 자격을 갖춘 이라는 뜻에서 응공應供이라고도 한다...............................P58~5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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