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산책 ▒/한하운 시인

소록도 가는 길에 / 한하운

나무향(그린) 2007. 11. 25. 11:24

소록도 가는 길에 / 한하운

 

全羅道 길 ― 소록도로 가는 길에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고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全羅道) 길. 한하운 시집 《파랑새》 중에서

 

 

 

 

 

 

 

 

 

 

 

 

全羅道 길

― 소록도로 가는 길에

                                       한 하 운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고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全羅道) 길.

 

 

한하운 시집 《파랑새》 중에서

 

 

 

한하운(韓何雲) 연보

 

1919년 2월 24일, 함경남도 함주군 동촌면 쌍봉리에서 한종규(韓鐘奎)의 2남3녀중 장남으로  출생.

           (본명 : 한태영 韓泰永, 이후 개명 : 한하운 韓何雲)

1926년 한하운의 진학을 위해 함흥으로 이사.

1933년 몸이 붓기 시작(癩病 발병의 시초)

1936년 전라북도 이리농림학교 졸업. 중학 5학년 때 癩病임이 판명됨.
           단편소설 <어머니>를 조광[朝光], <두견새>를 삼천리에 투고.

1939년 동경 성혜고등학교 수료.

1942년 중국 국립 북경대학(北京大學)농업원 축산학과 졸업.

           논문으로 조선축산사(朝鮮畜産使) 저술.

1943년 귀국 후 함남도청 축산과 임용. 장진군(長津郡)으로 전근. 
            면양(綿洋) 연구와 개마고원 개간에 몰두.

1944년 경기도청 축산과 전근. '나병' 발병으로 치료 시작.
            본명을 한하운(韓河雲)으로 개명함.

1945년 8. 15 해방과 함께 소련 군정이 시작되자 재산을 몰수당함.
                        
1946년 함흥 학생의거 사건에 연루, 소련군에 체포되어 형무소 수감.                                        

1947년 동생이 주동한 북한 전복의거에 연루되어 체포됨.
            형무소에서 탈옥하여 월남. 전국을 방랑하며 시작(詩作)에 몰두. 다시 월북.

1948년 7월 월남.

1949년 4월 첫작품 <전라도길> 외 12편을 '신천지' 4월호에 발표.     
           5월  <한하운 시초>를 정음사에서 발간.
           경기도 수원시에 있는 나환자촌 하천부락(河川部落)에 정착.

1950년 경기도 부평에 나환자 수용촌 '성혜원(成蹊園)'을 설립.

1951년 '신명보육원'을 창설하여 나환자 미감아들을 수용하여 교육 시킴.

1953년 경기도 용인에 '동진원(東震園)'을 설립.                      
           대한 한센 연맹위원회 회장 취임. 


1954년 전국 나병환자의 중앙기관인 '대한한센총연맹'을 결성하여 위원장으로 선임.
            <한하운 시초>가 불온하다고 하여 국회 및 방송 등에서 논란되었으나 무혐의로 밝혀짐.

1955년 3월, 제 2시집 <보리피리>를 간행.
           월간 '희망'지에 자선전 <나의 슬픈 반생기>를 연재. 

 

1956년 제3시집 〈한하운시전집〉간행.   

 

1957년 자서전 〈나의 슬픈 반생기〉간행.

      
1960년 자작시 해설집 〈황톳길〉및〈정본 한하운시집〉간행.

           '청운보육원' 원장에 취임. 음성나병으로 판단받음.  한미 제약회사를 창설, 회장에 취임.

1962년 신문회관에서 첫 시화전(詩畵展) 개최, <한하운 시화집>을 문화교육 출판사에서 간행.

1963년 가축개량사업으로 '경인종축장(京仁種畜場)을 부평에 설립함.

1964년 월간 <새빛>을 창간하여 <세계나문학소사(世界癩文學小史)>를 연재.

1966년 신안농업기술학교 교장 취임.


1973년 전남 고흥군 도양면 소록도에 시비(詩碑)  '보리피리' 건립.

1975년 2월 28일  인천 십정동 자택에서 지병인 간경화증으로 인해 영면(永眠).
           세상을 떠나면서 천주교에 귀의.
           경기도 김포군 김포읍 장릉 묘원에 안치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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