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문을 열면 성당의 종탑과
이끼 낀 돌층계와 언덕길이 보이는 곳
가끔 까치들이 산책 나오는
잔디밭과 채마밭이 보이는 곳
↑오동나무
갖가지 모양의 꽃들이 철따라 고운 빛으로
피고 지는 꽃밭이 보이는 곳
수녀원을 다녀가는 손님들의 가벼운 발걸음과
웃음소리가 음악으로 들려오는 곳
↑이질풀 씨앗
나는 이 방을 '꽃자리 선물방'
또는 '누구라도 시인방'이라고 부른다
나는 매일 이 방에서 생각하고 기도하고
글을쓰고 가끔은 음악을 들으며 사람들을 만난다
↑부겐베리아
이 방을 다녀가는 이들에게
나는 솔숲에서 주운 솔방울이나 바닷가에서 주워 온 조가비들
몽당연필이나 앙증스런 색종이 상자를 작은 선물로 준다
↑시계초
내게 말없이 참을성을 가르쳐주는 꽃과 나무들,
수도원 식구들,독자들,친지들......
모두를 다시 소중한 선물로 받아 안으며
나는 오늘도 선물방 주인이 된다
↑앉은부채
이 방을 항상 기쁨방
나눔방의 꽃자리로 만들라는
우리 수녀님들의
목소리를 새겨 듣는다
↑단정화
생각을 잘 익혀야 좋은 시를 쓸 수 있고
삶을 잘 익혀야 아름다운 사람으로 성숙 할 수 있음을
새롭게 알아듣는 가을
↑서어나무 ♀
그동안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은 기쁨을
다시 사랑으로 되돌려주고 싶은 나의 열망이
석류 열매처럼 툭 하고 쪼개지는 소리를 듣는 가을
↑수염가래꽃 ♂
그동안 내가 빚어놓은
시의 글꽃들을 부족한 대로나마 곱게 엮어
사랑하는 이들에게
오랜만에 작은 선물로 바칠 수 있는 가을
↑위성류
나는 새삼 행복하고
고마워서 눈물이 난다.
1999년 가을
이해인
↑비녀골풀
이해인 수녀님 시집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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