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씨, 호박씨 / 백석
어진 사람이 많은 나라에 와서
어진 사람의 짓을 어진 사람의 마음을 배워서
수박씨 닦운 것을 호박씨 닦은 것을 입으로 앞이빨로 빍는다
수박씨 호박씨 입에 넣는 마음은
참으로 철없고 어리석고 게으른 마음이나
이것을 또 참으로 밝고 그윽하고 깊고 무거운 마음이라
이 마음 안에 아득하니, 오랜 세월이 아득하니,
오랜 지헤가 또 아득하니, 오랜 인정이 깃든 것이다
태산의 구름도 황하의 물도
옛임금의 땅과 나무 의 덕도 이 마음 안에 아득하니 뵈이는 것이다
이 작고 가벼웁고 갤족한 희고 까만 씨가
조용하니 또 도고하니 손에서 입으로 입에서 손으로 오르나리는 때
벌에 우는 새소리도 듣고 싶고, 거문고도 한곡조 뜯고 싶고
한 오천말 남기고 한곡관도 넘어가고 싶고
기쁨이 마음에 뜨는 때는 희고 까만 씨를 앞니로 까서 잔나비가 되고
근심이 마음에 앉는 때는 희고 까만 씨를 혀끝에 물어 까막까치가 되고
어진 사람이 많은 나라에서는
五斗米를 버리고 버드나무 아래로 돌아온 사람도
그 녚차개에 수박씨 닦은 것은 호박씨 닦은 것은 있었을 것이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베개 하고 누었던 사람도
그 머리맡에 수박씨 닦은 것은 호박씨 닦은 것은 이었을 것이다.
*밝는다 : 껍질을 벗겨 속에 들어 있는 알맹이를 지어낸다.
*도고하니 : 짐짓, 의젓하게.
*함곡관 : 요동반도에서 북경으로 가는 길목. 에로부터 교통의 길목.
*오두미 : 도연명의 월급, 당시 현감의 월급이 오두미에 해당되었음.
*녚차개 : 호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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