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을 위증한 과보
슈라바스티에 큰 부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딸만 다섯이고 아들이 없어, 이것이 유일한 걱정거리였다. 그 나라의 법으로는 가장이 죽었는데 아들이 없으면, 그가 가졌던 모든 재산이 국가에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부자는 마침내 병들어 죽었다. 슈라바스티의 왕은 관리를 보내어 그 집의 재산을 모두 챙겨 기록하게 했다. 하는 수 없이 막대한 재산을 나라에 바치게 되었을 때 딸들은 머리를 모아 의논했다. 그리고 왕에게 사정을 얘기하기로 했다.
“저희 아버지는 유산을 상속할 아들이 없이 돌아가셨으니, 그 재산은 마땅히 나라에 바쳐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저희 어머님이 임신 중이므로 해산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결과를 보아 처리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정의로써 나라를 다스리던 왕은 이 이야기를 듣고 타당하다고 생각해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 후 오래지 않아 달이 차서 그 딸들의 어머니가 아기를 낳았다. 그러나 아기의 몸은 두루뭉수리여서 귀도 눈도 없고, 입은 있으나 혀가 없었으며, 손발도 없었다. 그러나 남근만은 제대로 달려 있었다. 그래서 이름을 만지비리라고 했다.
딸들은 왕한테 가서 이 사실을 아뢰었다. 왕은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했다.
‘눈과 귀와 혀, 그리고 손발로써 재산의 임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내라야 임자가 될 수 있다. 두루뭉수리라고는 하지만 이 아이에게는 다행히 남근이 있으니, 마땅히 아버지의 재산을 이어받을 자격이 있다.
왕은 그 집 딸들에게 말했다.
"재산은 너희들의 동생이 이어받을 수 있다."
’ 얼마 후 큰딸은 시집을 갔다. 그녀는 남편 섬기기를 어찌나 극진히 하던지, 마치 종이 상전을 섬기듯 했다.
이웃집에 사는 사람이 그녀를 보고 물었다.
“부부의 법도는 집집마다 각기 다르겠지만, 새댁은 어찌 남편 섬기기를 종이 상전 섬기듯 하십니까?”
그러자 새댁이 대답했다.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 많은 재산이 모두 나라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딸이 다섯이나 되었지만 자식 구실을 못한 거지요. 마침 어머니가 유복자를 낳았는데, 눈과 귀와 혀와 손발이 없는 두루뭉수리였지만 다행히 고추가 달려 우리 집 재산을 상속하게 되었지요. 이런 일로 해서, 많은 딸들이 한 사내만 못하다는 걸 알고 바깥어른을 받드는 것이랍니다.”
이웃 사람은 그 말을 듣고 괴상히 여겨, 새댁과 함께 부처님께 가서 그 까닭을 물었다.
“세존이시여, 저 부잣집 아들은 어떤 인연으로 눈과 귀와 혀와 손발이 없으면서도 그 집에 태어나서 재산을 상속받게 되었습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잘 물었소. 당신들을 위해 해설할 테니 잘 듣고 명심하시오. 그 옛날 부자 형제가 있었는데, 형은 젊을 때부터 정직하고 진실하며 남한테 베풀기를 좋아해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도왔소. 나라 안에서는 모두 그의 신의와 착함을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지요. 그래서 왕은 그에게 재판관의 임무를 맡겨 소송의 잘잘못을 판단하게 했소.
당시 그 나라에서는 빌려 주고 받는 데 증서 같은 것은 따로 쓰지 않았소. 모두 재판관 앞에 가서 그를 증인으로 삼아 주고 받으면 되었기 때문이오.
그때 어떤 상인이 바다에 나가 보물을 구해 오려고 준비를 하던 중에 재판관의 아우에게 많은 돈을 꾸게 되었소. 아우에게는 어린 외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자기 아들이 보는 데서 상인에게 돈을 내주고 형님인 재판관에게 함께 찾아가 말했소.
‘형님, 이 상인은 저한테 돈을 꾸었는데 바다에 나갔다 돌아오면 갚을 것입니다. 형님이 저를 위해 증인이 되어 주십시오. 만일 제가 죽거든 제 아들이 그 돈을 받도록 해 주십시오.’
재판관인 그의 형은 손가락으로 돈을 가리키면서 ‘그렇게 하리라.’고 말했소.
아우는 그 후 얼마 안 가서 죽었지요.
상인은 바다에 나갔다가 거센 풍랑을 만나 배를 잃고 몇 해만에 겨우 목숨만 살아 돌아왔소. 돈을 빌려 준 집 아들은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온 그를 보고 ‘저이는 우리에게 많은 빚을 졌지만 실패했으니, 이다음에 돈을 벌면 갚아 달라고 하자.’ 이렇게 생각하고는 그대로 지나쳤소.
상인은 다른 친구와 함께 다시 먼 바다에 나가 이번에는 많은 보물을 가지고 무사히 돌아왔소. 그러나 욕심이 생긴 상인은 이렇게 생각했소.
‘돈을 빌려 온 집 아들은 전날 나를 보았으면서도 빚 독촉을 하지 않았다. 내가 자기 아버지한테 돈을 빌릴 때 그는 어린아이였으니, 그 일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는 빚 갚을 생각을 하지 않았소.
어느 날 상인은 화려한 옷을 입고 온갖 보석으로 장식한 말을 타고 거리를 지나갔소. 그 모습을 본 채권자의 아들은 저 사람이 돈을 많이 번 모양이니 이제는 빚을 갚아 달라고 해도 되겠다 생각하고, 그에게 말했소.‘
당신은 우리 집에 빚을 졌으니, 이제는 갚아 주셔야지요.’
‘그래, 차차 갚도록 하겠네.’
상인은 이렇게 대답했지만 생각이 달라졌소. 이자까지 합치면 그 액수가 많았기 때문에 어떻게 갚지 않을까를 궁리했소.
그는 귀한 보석을 하나 가지고 재판관의 부인을 찾아갔소.
‘사모님, 내가 전날 재판관님의 아우에게 돈을 빌렸는데, 그 아들이 내게 와서 빚을 독촉합니다. 이 구슬은 십만 냥의 값어치가 있는데, 이것을 사모님께 드리겠습니다. 제 청탁을 재판관님께 말씀드려 그 때 증인이 된 일이 없다고만 해 주십시오.’
그러자 부인은, 자기 주인은 정직하고 꿋꿋한 성품이라 듣지 않을 거라고 하면서 그래도 말은 한번 해 보겠노라고 그 보석을 받았소.
그날 밤 주인에게 그런 말을 하자 주인은 펄쩍 뛰었소.
‘어찌 그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이오. 내가 강직하다고 여겨 왕께서 나에게 옳고 그름을 가리는 임무를 맡겼는데, 어떻게 거짓을 말할 수 있겠소.’
다음 날 상인이 찾아왔을 때 부인은 그 사정을 말하고 받았던 보석을 돌려주었소. 그러나 상인은 다시 이십만 냥의 값이 나가는, 그 부인으로서는 처음 보는 황홀한 보석을 내놓으면서 일이 꼭 이루어지도록 해 달라고 사정했소.
‘말 한 마디에 이십만 냥을 그냥 얻는 것입니다. 저쪽에서 이긴다면 비록 친척이지만 사모님에게는 아무런 이익도 없을 것입니다.’
부인은 황홀하게 빛나는 그 보석이 잔뜩 탐나서 그것을 받아들였소. 그날 밤 다시 주인에게 어제 일을 꺼내 이야기했소. 그러나 주인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 했지요. 이때 부인은 울면서 하소연했소.
‘저는 당신과 부부가 되어 죽을 때까지 뜻을 같이하기로 한 사이예요. 부부지간에 이런 부탁 하나 들어주지 못한다면 더 살아서 뭐 하겠어요. 만일 제 뜻을 받아 주지 않는다면 아이와 함께 죽어 버리겠어요.’
주인은 이 말을 듣고 마치 목구멍에 무엇이 걸려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것 같았소. 그래서 생각했소.
‘내게는 아들 하나뿐인데, 이 애가 죽으면 내 재산을 물려줄 데가 없다. 그렇다고 아내 말대로 따르면 신의를 저버리게 되지 않는가.’
그는 밤새껏 고민하다가 마침내 아내의 청을 들어주겠노라고 승낙하고 말았소. 아내는 기뻐하면서 그다음 날 찾아온 상인에게 이제는 걱정 말라고 일러 주었소. 상인은 뛸 듯이 기뻐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다가 채권자의 아들을 만났소. 그러자 그 소년이 다시 말을 꺼냈소.
‘저번에 말씀드린 그 빚을 이제는 갚아 주셔야지요.’
상인은 펄쩍 뛰면서 놀란 체했소.
‘무슨 소린가. 나는 전혀 기억이 없네. 만일 자네한테 빚졌다면 그 증인은 누구란 말인가.’
두 사람은 옥신각신하던 끝에 재판관을 찾아가기로 했소. 소년이 말했소.
‘이 사람이 전날 우리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 갈 때, 백부께서 증인이 되셨고, 저도 그 자리에 같이 있었습니다. 백부께서는 이제 증인이 되어 주십시오.’
그러나 재판관인 백부는,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다.’ 라며 시치미를 떼었소. 조카는 하도 어이가 없어 거듭 호소했소.
‘백부께서는 바로 이 자리에서 분명히 보고 듣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손가락으로 그 돈을 가리키면서 그렇게 하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나 재판관은 ‘그런 일이 없다.’ 고 잡아떼었소. 그의 조카는 몹시 분개하면서 이와 같이 말했소.
‘백부께서 충성스럽고 진실하다 해서 나라에서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재판관의 임무를 맡겼고, 백성들은 모두 그렇게들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친조카인 저한테까지 거짓으로 증인을 서고 있으니, 다른 사람의 경우는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한 일이 많겠습니까. 그러나 알아 두십시오. 이 사실의 옳고 그름은 이다음에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의 재판관이 지금의 눈도 귀도 입 안의 혀도 손발도 없는 두루뭉수리 바로 그 사람이오. 그는 그때의 거짓 증언으로 말미암아 지옥에 떨어져 많은 고통을 받았고, 지옥에서 나와서는 5백 생 동안 두루뭉수리의 몸을 받았소. 그러면서도 그가 많은 재산을 상속받은 것은 평소에 베풀기를 좋아했기 때문이오. 명심하시오. 선악의 갚음은 이와 같이 아무리 오래되어도 사라지지 않소. 그러므로 항상 몸과 말과 뜻을 잘 단속해 악한 일을 하지 않도록 힘써야 하오.” <현우경> 장자무이목설품長者無耳目舌品
좀 지루하긴 하지만, 사회면 기사의 단면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정의와 신의를 저버리고 직권을 남용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밝혀 준 인과관계다. 절대적인 사랑의 신이 있다면 그 자식인 사람들을 똑같이 당신과 닮게 지어 놓았을 텐데, 세상에는 태어날 때부터 여러 가지로 불구가 된 생물[물론 사람도 포함해서]이 있다. 이것은 결코 신의 실수가 아닐 것이다. 실수를 한다면 그가 어디 지고한 신일 수 있겠는가. 이런 경우 고대 인도 사람들은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받는 업보라고 생각했다. 업의 결과가 이와 같으므로, 현재 새로운 선업을 쌓으면 얼마든지 고쳐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인과론은 운명론과 그 틀이 다르다.
연탄 걱정, 양식 걱정 하면서 살아가는 서민들에게는 아무 데도 쓸모없는 한낱 광석에 지나지 않지만, 상류층 부인들은 보석을 몹시 좋아들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 보석을 손에 넣으려고 저지른 부정이 연쇄반응을 일으켜 남편의 망신은 접어 두고라도, 온갖 부정부패며 사회악을 불러일으키는 일을 우리는 드물지 않게 봐 오고 있다. 여기 소개한 경전에서도 판사네 마누라가 보석에 홀려 자기 영감을 구워삶는 장면이 나온다. 법관이 되려면 타인을 다스리기 전에 먼저 자기 집안부터 다스려야 한다는 교훈이 행간(行間)에 박혀 있다. 한 생각 비뚤어지는 데서 패가망신하는 것이 세상사 아닌가. 세상에 공것이란 티끌만큼도 없다는 것이 우주 질서인 인과관계다. 내일이 없이 오늘만 살고 말아 버린다면 누가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현재는 과거의 연속이고 미래는 현재의 지속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내게는 나 자신의 현존재를 미래로 이어 나가게 할 책임이 있다. <인과경因果經>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전생의 일을 알고 싶거든 현재 내가 받는 것을 보라. 내생의 일을 알고 싶거든 현재 내가 짓고 있는 것을 보라.” 그러니 자기를 형성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곧 자기 자신이라는 말이다. 외부적인 현상이나 환경도 자기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연기의 이론이다. 법정스님 <이연 이야기> ..................P194~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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