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판을 배에 두르고 다니는 사나이
사티아 니간타라고 하는 나이가 많고 학문이 높은 바라문이 살고 있었다. 그는 총명과 제혜가 뛰어나 나라 안에서도 그 명성이 자자했다. 또 그에게는 많은 제자들이 따랐다. 이런일 때문에 그는 자기도취에 빠져 눈앞에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우스꽝스럽게도 철판으로 배를 싸고 다녔다. 사람들이 괴상하게 여겨 그 까닭을 물으면, 그는 한껏 으스대며 이렇게 대답했다.
"지혜가 터져 나올까 두렵기 때문이오."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해 밝고 지혜로운 법으로 많은 사람들을 가르친다고 말을 듣고, 그는 시기심 때문에 자나 깨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느 날 그는 제자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들으니 사문 고타마는 스스로 부처가 되었다고 한다는구나. 내가 지금 그에게로 가서 깊고 묘한 이치를 물어 말문을 막아 버리겠노라."
그는 제자들을 거느리고 부처님이 머물고 계신 슈라바스티의 기원정사로 향했다. 그러나 기원정사에 이르러 부처님의 위엄이 해돋이같이 빛나는 것을 보고 나서는 기쁨과 두려움이 그를 착잡하게 했다. 그는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나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대답해 주십시오. 어떤 이를 가리켜 도인이라 이르고 지혜롭다 하며, 어던 이를 장로라 하고 단정하다 합니까? 또 어떤 사람을 가리켜 수행자라 하고 비구라 하며, 어질고 밝다 합니까? 그리고 어떤 사람을 가리켜 도가 있다 하고 법을 받든다 합니까?"
부처님은 그의 물음에 계송으로 대답하셨다.
배우기를 좋아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마음이 올바르고 법답게 행하며
정의를 지키는 지혜로운 사람
그를 가리켜 도인이라 하느니라
어던 것이 지혜로운 사람인가
말 잘하는 것만이 아니라
두려움 없고 걱정도 없으며
선을 지키는 이가 지혜로운 사람
나이가 많다고 해서 장로인가
머리카락이 희다고 해서 장로인가
그의 나이 혓되이 늙었으니
그것은 속이 빈 늙은이일 뿐
진실과 진리와 부드러움과
불살생과 절제로써
더러운 때를 벗어 버린 사람
그를 진정한 장로라 하네
어떤 것이 단정한 사람인가
질투하고 인색하고 겉으로 꾸미거나
말과 행동에 어긋남이 있으면
꽃 같은 모습은 될 수 없네
질투와 인색과 위선을
뿌리째 뽑아 없애 버리고
지혜로워 성내지 않은 이
그런 사람을 단정하다 하네
어떤 것이 수행자인가
머리를 깍았기 때문이 아니다
허위와 탐욕에 차 있는 자가
어찌 수행자가 될 수 있으리
크고 작은 악을 물리치고
도량이 넓고 진리를 잘 펴며
마음이 고요해서 잠잠한 이
그를 일러 수행자라 하네
어떤 것이 비구인가
밥을 빈다고 해서 비구가 아니다
삿된 행으로 바라는 것 없으면
그것은 다만 이름을 구함이니
온갖 죄악의 업을 잘라 버리고
법다운 행을 깨끗이 닦아
지혜로써 온갖 악을 부수는 이
그를 일러 비구라 하네
어떤 것이 어질고 밝음인가
입에 말이 없다고 해서가 아니라
마음 쓰는 것을 맑고 깨끗하게 못 하면
바깥 형식만 따르는 것이니
마음에 거리끼는 일 없어
그 마음의 행이 밝게 비고
이것저것 사라져 고요해지면
그를 일러 어질고 맑다 하네
어던 것을 도가 있다고 하는가
한 생명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
널리 모든 중생을 두루 건져
해침이 없음을 도가 있다고 하네
어떤 것이 법을 받듦인가
많이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비록 들은 법은 적더라도
그것을 몸소 익혀 행하고
도를 잘 지켜 잊지 않는 이
그를 일러 법을 받든다고 하네
사티야 나간타와 그의 제자들은 이와 같은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마음이 열려 기뻐했다. 그들은 교만한 생각을 버리고 부처님께 귀의해 비구가 되었다.
<법구 비유 경> 봉지품奉持品
얼굴이 쇠가죽처럼 두껍고 뱃심이 좋은 사람을 가리켜 흔히 배에 철판을 깐 사나이라고 하는데, 2천5백여 년 전에도 그런 사나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동서고금을 가릴 것 없어 중생들이 사는 곳이라면 거기가 거기일 것이다.
부처님이 살아 계실 때 인도에 있었던 육사六師(세력이 가장 큰 여섯 명의 사상가) 중에 나간타 나타풋타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티야 니간타는 이 파에 속한 수행자였던 모양이다. 그 당시는 교파끼리 논쟁이 심했는데, 논쟁에서 지면 승리자에게 귀의하는 것이 일반적인 풍습이었다. 어떤 것이 진정한 도인이며 비구이며 수행자이며 장로인가. 이런 문제가 제기된 것으로 미루어 그 시절에도 사이비들이 많았던 것 같다. 밖으로 드러난 형식이나 권유만으로는 진실한 인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이 이야기는, 오늘 우리들을 비춰 볼 수 있는 '옛 거울'이다. 수행자나 진리의 세계에서는 권위의식이라는 것이 곧 실속 없는 거짓임을 밝힌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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