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때 - 서정주
내가 고독한 자의 맛에 깃든 건 다섯 살 때부터다.
부모가 웬일인지 나만 혼자 집에 떼놓고 온종일을 없던 날,
마루에 걸터앉아 두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가
다디미돌을 베고 든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것은 맨 처음으로 어느 빠지기 싫은 바닷물에 나를 끄집어들이듯 이끌고 갔다.
그 바닷속에서는, 쑥국새라든가 ㅡ
어머니한테서 이름만 들은 형체도 모를 새가
안으로 안으로 안으로 초파일 연등 밤의
초록 등불 수효를 늘여 가듯 울음을 늘여 가면서
침몰해 가는 내 주의와 밑바닥에서 이것을 부채질하고 있었다.
뛰어내려서 나는 사립문 밖 개울 물가에 와 섰다.
아까 빠져 있던 가위눌림이 알따라이 흑흑 소리를 내며,
여뀌풀 밑 물거울에 비쳐 잔잔해지면서,
거기 떠가는 얇은 솜구름이 또 정월 열나흩날 밤에
어머니가 해입히는 종이적삼 모양으로
등짝에 가슴패기에 선선하게 닿아 오기 비롯했다.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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