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사적 제195호
명 칭 : 여주 영릉(英陵)과 영릉(寧陵) (驪州 英陵과 寧陵) 분 류 : 유적건조물 / 무덤/ 왕실무덤/ 조선시대 수량/면적 : 2,008,536㎡ 지정일 : 1970.05.26 소 재 지 : 경기 여주군 능서면 영릉로 269-50 시 대 : 조선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세종대왕유적관리소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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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인석1 |
▲ 문인석2 |
△ 사적 제195호 - 여주 영릉(英陵)
-영릉(英陵)은 조선 4대 세종(재위 1418∼1450)과 부인 소헌왕후 심씨(1395∼1446)의 무덤이다.
세종은 정치·경제·사회·역사·문화 등 각 분야에서 조선시대 문화의 황금기를 이룩한 왕이다.
세종 28년(1446)에 소헌왕후가 죽자 헌릉 서쪽 산줄기에 쌍실 무덤인 영릉을 만들었다. 동쪽 방은 왕후의 무덤으로 삼고, 서쪽 방은 왕이 살아 있을 때 미리 마련한 무덤으로 문종 즉위년(1450)에 왕이 죽자 합장하였다. 조선왕릉 중 최초로 한 봉우리에 서로 다른 방을 갖추고 있는 합장무덤을 하고 있다.
무덤배치는 『국조오례의』에 따라 만든 것으로, 조선 전기 무덤배치의 기본이 되었다. 세조 이후 영릉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무덤을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옮기지 못하다가 예종 1년(1469)에 여주로 옮겼다.
무덤의 주변에는 12칸의 난간석을 둘렀다. 무덤을 옮길 때 전에 있던 석물인 상석, 명등석, 망주석, 신도비들은 그 자리에 묻었으며, 훈민문·세종대왕동상·세종전 등은 1977년 영릉정화사업 때 세운 것이다.
※(영릉·녕릉 → 여주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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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대 세종(世宗, 1397~1450) 1418~1450 휘는 도. 태종의 셋째아들. 집현전을 두어 학문을 장려하고,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측우기, 해시계 등의 과학기구를 창제케함. 외치에도 힘을써 북쪽에 사군과 육진, 남쪽에 삼포를 두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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