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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존 문조와 妃 신정왕후 - 동구릉내 수릉

나무향(그린) 2010. 8. 5. 11:37

지정종목 : 사적

지정번호 : 사적 제193호

지정일 : 1970년 05월 26일

소재지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 7-2

시대 :조선

종류/분류 : 왕실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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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적 제193호 - 구리 동구릉 / 수릉(추존 익종 [문조와 비(妃) 신정왕후]. 111228. 공사중이었다.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동구릉에 있는 추존왕 익종과 그의 비 신정왕후 조씨를 합장한 무덤이다.

 

조선 순조(純祖, 재위 1800∼1834)의 원자로 왕세자(효명세자)로 책봉되고, 사후에 왕으로 추존된 익종(翼宗 1809~1830)과 부인 신정왕후(神貞王后) 조씨(1808~1890)를 합장한 무덤이다. 효명세자는 1830년(순조 30) 5월 6일 창덕궁 희정당에서 숨을 거두었고, 같은 해 8월 4일 서울 석관동에 있는 경종 무덤인 의릉(懿陵) 좌측에 무덤을 만들어 연경묘(延慶墓)라 하였다. 1835년(헌종 즉위) 5월 19일 효명세자가 왕(익종)으로 추존되면서 연경묘는 수릉(綏陵)이라는 능호를 받았다.

 

그 후 풍수상의 문제로 2번에 걸쳐 능을 옮겨 1855년(철종 6) 현재의 위치인 동구릉(東九陵, 사적 제193호)의 태조 무덤 건원릉 좌측에 자리 잡았다. 신정왕후는 1890년(고종 27) 4월 17일 경복궁 흥복전에서 숨져 같은 해 8월 30일 익종과 합장되었다. 조선 왕릉은 일반적으로 3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수릉은 2단으로 되어 있다. 봉분이 있는 윗단에는 봉분을 둘러싼 12칸의 난간석과 혼유석 1좌, 석양(石羊)·석호(石虎) 각 2쌍, 망주석 1쌍이 있으며 3면의 나지막한 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아랫단에는 무인석·석마(石馬) 각 1쌍, 문인석·석마 각 1쌍이 배치되어 있다. 문인석은 길쭉한 얼굴에 눈과 입술이 가늘게 표현되고, 어깨를 움츠리고 목을 앞으로 빼고 있는 형태로 조선 후기 인물 조각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추존(追尊)이란

동양에서 어떤 인물이 죽은 뒤에 그를 높여 부르는 특별한 호칭을 올리는 일이다. 특별히 왕 또는 황제로 추존하는 일을 추숭(追崇)이라 한다. 한편 아랫 사람이나 신하에게 높여 부르는 특별한 호칭이나 제후직을 사후 내리는 것과 군, 부원군, 대원군 등의 작위를 사후 올리는 일은 추봉(追封)이라고도 한다. 왕조에서 추존하는 대상은 대부분 왕족이나 황족, 제후 등이며, 민간에서 추존하는 대상은 조상 가운데 쇠퇴한 가문을 일으켜 세운 사람으로 중시조로 추존한다(→보첩#용어). 그밖에 죽은 승려의 불덕을 높이 사서 국사 또는 왕사 등의 호칭을 올리는 일도 추존이라 하며, 불교를 숭앙한 고려 때에 여러 고승을 왕명으로 추존하였다.

 

 

추존 익종 [문조(文祖)]와 비(妃) 신정왕후(神貞王后) - 수릉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62 {東九陵 소재} 사 적 : 제 193 호

 

 

*추존(追尊)이란

 

동양에서 어떤 인물이 죽은 뒤에 그를 높여 부르는 특별한 호칭을 올리는 일이다. 특별히 왕 또는 황제로 추존하는 일을 추숭(追崇)이라 한다. 한편 아랫 사람이나 신하에게 높여 부르는 특별한 호칭이나 제후직을 사후 내리는 것과 군, 부원군, 대원군 등의 작위를 사후 올리는 일은 추봉(追封)이라고도 한다. 왕조에서 추존하는 대상은 대부분 왕족이나 황족, 제후 등이며, 민간에서 추존하는 대상은 조상 가운데 쇠퇴한 가문을 일으켜 세운 사람으로 중시조로 추존한다(→보첩#용어). 그밖에 죽은 승려의 불덕을 높이 사서 국사 또는 왕사 등의 호칭을 올리는 일도 추존이라 하며, 불교를 숭앙한 고려 때에 여러 고승을 왕명으로 추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