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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조선왕릉 - 선릉 정릉

나무향(그린) 2010. 8. 5. 10:53

 

 

 

 

 

 

 

 

 

 

 

 ▲ 선릉(성종) ▼ 계비 전현왕후

 

 

 

 

------------△ 선릉

------------▽ 정릉

 

 

 

 

 

 

 △ 사적 제199호 - 서울 선릉과 정릉 (정릉) . 121113.


선릉·정릉(宣陵·靖陵)의 주산(主山)이라 할 배산(背山)은 산세(山勢)가 낮고 완만(緩慢)하며 좌우(左右)의 호위산세(護圍山勢) 또한 같은 구릉성 임야지(丘陵性 林野地)로서 동편(東便)에는 정릉(靖陵)이 서편(西便)에는 선릉(宣陵)이 있는 바 릉경역(陵境域)은 일반인(一般人)의 출입(出入)과 개전(開田)을 금(禁)하는 지역(地域)임에도 일정시 조선총독부(日政時 朝鮮總督府)는 식량증산 명목(食糧增産 名目)아래 저지대 개간(低地帶 開墾)을 허가(許可)하고 심지어는 양릉(兩陵) 사이 구릉 저지(丘陵 低地)까지 개전(開田)이 허가(許可)되어 릉림(陵林)이 제벌(除伐)되고 개전(開田)되면서 일부 농지(一部 農地)는 릉침(陵寢)보다 북측 상위(北側 上位)까지 미치게 되는 참담(慘憺)한 지경에 이른다. 8·15광복(光復)을 거쳐 6·25전란 후 인근 농민(戰亂 後 隣近 農民)에 의한 개간(開墾)은 계속(繼續)되어 릉침 부근(陵寢 附近)까지 개전(開田)된데다가 1950년도 농지개혁법(農地改革法)에 의하여 농지(農地)는 경작자(耕作者)에게 분배처분(分配處分)되면서 릉역내(陵域內)에서 사유농지(私有農地)가 생기게 된다. 1960년대 서울의 급격(急激)한 비대확장(肥大擴張)으로 인구(人口)의 분산(分散), 주택용지 해결(住宅用地 解決)을 위하여 서울시는 한강 이남(漢江 以南)의 강남지역(江南地域)을 개발(開發)하게 되고 토지구획정리사업(土地區劃整理事業)을 1970년대부터 시행(施行)하면서 선·정릉(宣·靖陵) 동·서·북(東·西·北)의 릉지(陵地)는 택지(宅地)로 변모(變貌)되고 릉침(陵寢)이 간선도로(幹線道路)와 접면(接面)하는 등 현재(現在)의 선·정릉(宣·靖陵) 경역(境域)이 이루어졌으니 도회지(都會地) 속의 고도(孤島)와 같다. 도시계획사업(都市計劃事業)을 주관 시행(主管 施行)한 서울시나 관계당국(關係當局)의 천견단려(淺見短慮)가 아쉬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