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장터에서 / 이형권
여우가 살고 부엉이가 운다는
두메산골 깊은 골에 내 마음은 살아라
옛길 따라 고개를 넘던 시절
장꾼들과 나귀가 동무하여 쉬어가던 터
막걸리 사발로 삶을 적시던 주막집 스러지고
무성한 잡초밭 모퉁이에 초막집 하나
서리 맞은 산국, 천삼, 오가피, 구리당나무가
주렁주렁 매달린 그 흙바람집 천장아래
산사나무 붉은 열매로 빚은 술을 마시고
쓸쓸한 내 마음이여 살아라
바다로 가는 길을 따라 바다에 갔고
산으로 숨어든 길을 따라 산으로 갔고
이슬 젖은 꽃들을 보러 초원으로 갔고
장마비에 젖어 푸른 산맥을 넘었으니
겨울 바람소리가 서러운들 어떠랴
동짓날 기나긴 밤이 적막한들 어떠랴
낯선 곳으로 흘렀던 길이 세월 따라 깊었으니
산골집 모닥불 곁에서 밤의 슬픔에 가 닿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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