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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충만 - (53) 예절과 신의가 무너져간다

나무향(그린) 2017. 8. 1. 07:05

텅빈충만 - (53) 예절과 신의가 무너져간다

 

 산수유와 매화가 먼저 꽃을 피우더니 요즘은 온 산천에는 진달래꽃이 만발이다. 어디를 가나 봄철에 꽃을 피울 만한 화목들은, 저마다 자신이 지닌 가장 고운 혼의 빛깔을 뽐내느라고 울긋불긋 눈부신 생명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축대 밑에서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수선도 오늘 아침 활짝 문을 열었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게 아니라 꽃이 피어나니 이 대지에 봄이 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꽃이 없는 봄을 우리는 상상인들 할 수 있겠는가. 대지에는 이렇듯 봄기운이 넘치고 있는데, 유달리 우리 사회면만은 겨울의 두껍고 칙칙하고 답답한 그 옷을 벗지 못한 채 꽃이 없는 봄을 앓고 있다.

 

 우리 사회는 계층간에 이제 고질적으로 대립과 불신과 격돌과 증오로 뒤범벅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싶다. 입만 벌리면 모두가 하나같이 민주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하는 짓들을 보면 낱낱이 그 사례를 들출 것도 없이 가장 비민주적인 행동거지를 연출하고 있다.

 

 요즘 사회의 현실과 나라의 장래를 두고 생각할 때, 뜻있는 사람치고 걱정하고 우려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한마디로 우리 시대는 예절과 신의가 어디로 증발된 듯싶다. 예절과 신의가 인간의 품위를 형성하고, 그 예절과 신의가 인간사회의 질서를 유지한다. 그런데 그런 인간의 품위와 질서가 부재중이라면 그 사회와 시대 또한 역사에서 부재할 수밖에 없다.

 

 교통 질서만 해도 그렇다. 서로 양보해가며 물 흐르듯 흘러가는 것이 정상인 질서인데,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되든 아랑곳없이 자기만 혼자 급한 듯이 다투어 바져나가려고 기를 쓴다. 안면 몰수의 이런 무례가 5분 앞당기려다 50년을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무례가 또한 이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이 교통사고 왕국이라는 불명예를 가져온 것이다.

 

 

 걸핏하면 총장실에 쳐들어가 농성, 기물 파괴하고, 교수 대하기를 자기네 친구만도 못하게 보는 오늘날 대학의 이런 무례한 풍토를 우리는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교수와 학생 사이는 그 어떤 이념 앞에서라도 사제간의 관계다. 제자가 스승의 그림자 밟기마저 두려워했던 옛 풍습은 그만두고라도 사제간의 기본적인 예절과 신의는 지켜야 한다. 대학이 학문과 지성의 전당이라면 서로간의 이해관계도 논리적인 전개 과정과 지성적인 양식으로 극복하고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뜻이나 입장이 자기와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반민주요 보수 반동으로 몰아붙이는 작태가 학문과 지성의 세계에서 할 일인가. 심지어 어떤 대학생들은 자기네가 술집에서 마신 술값까지 교수더러 와서 갚으라고 한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교수와 학생 사이에 인간의 기본적인 품위인 예절과 신의가 회복되지 않고서는 우리 대학이 대학 본래의 구실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얼마 전 대전에 있는 신학대학에 다닌다는 학생과 만나 이야기한 적이 있다. 무슨 말끝에 그 학생은 나에게 불쑥 "스님은 보수주의자입니까, 혁신주의자입니까?" 라고 물었다.

 

 나는 즉석에서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나는 보수주의자도 아니고 혁신주의자도 아니다. 불타 석가모니의 지혜와 자비를 믿고 따르는 출가 수행자일 뿐이다."

 

 그리고 곁들여 나는 그 무슨무슨 "주의자主義者"를 싫어한다고 했다. 주의자들은 한정된 틀 속에 갇혀 전체를 볼 줄 모르기 때문이다. 주의자들은 자기네 주장만이 최고선이고 유일한 노선이며, 남의 의사나 주장은 반민주요 보수 반동이며, 역사 발전 장애 요인으로 몰아붙이는 극단적이요 독선적인 덫에 걸려 있는 자들이라고 일러주었다.

 

 

  노사간의 대립도 갈등도 따지고 보면 그 바탕에는 예절과 신의의 결여에 그 꼬투리가 있을 것 같다. 물질적인 불만이나 근로조건과 환경의 개선도 문제이긴 하지만, 예절과 신의로 다져져야 할 인간관계가 무너져버렸기 때문에 격돌과 살벌한 투쟁 쪽으로 기울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노사간의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사이다. 한국 경제가 지금처럼 발전한 것도 그 밑바탕에는 값싼 노동시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분배의 균형 못지 않게 예절과 신의로써 인간관계가 근본적으로 재정립되어야 한다. 기업은 국제수지 악화나 불항의 이유를 내세우기에 앞서, 기업의 실상을 정기적으로 전 종업원들에게 정직하고 소상하게 알림으로써, 무리한 요구와 불만이 합리적인 요구와 이해로 자리잡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감정적인 대립과 격돌은 해결을 가로막을 뿐 어느 쪽에도 득이 되지 않는다. 임금 투쟁이 마치 무슨 계급혁명의 과업처럼 치러지는 작금의 경향은, 민주화를 염원하는 수많은 시민들에게 두려움과 불안을 안겨주어 결국 등을 돌리게 될 거라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일부 정치인들의 언동에서도 투표권자인 우리들은 그 예절과 신의의 결여에 환멸을 느낄 때가 적지 않다. 입만 벌리면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국민의 이름을 앞세우지만, 상황에 따라 민주주의 이념과 국민의 뜻을 저버리기 일쑤인 그런 정치인과 정당에 대해서 국민들은 건망증을 갖지 말아야 한다.

 

 친구지간이나 부부 사이라 할지라도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바탕인 이 예절과 신의가 없으면, 자주 만나고 한 지붕 아래서 한 솥밥을 먹고 지내더라도 꺼풀만 남은 금이 간 사이다. 친하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절과 신의를 존중하고 지켜야 한다. 예절과 신의가 없으면 사람은 이내 빛이 바래 뻔뻔스런 속물이 되고 만다.

 

 요즘 우리 사회는 어느 계층을 가릴 것 없이 인간의 고결한 품성이요 기품인 이 예절과 신의가 무너져가고 있다. 요즘의 우리를 가리켜 누가 동방예의지국의 후예라 할 것인가. 걱정스런 일이다.

 

 한말의 경허鏡虛 선사는 이렇게 읊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모두가 꿈속의 일인 것을

      저 강을 건너가면

      누가 너이고 누가 나인가

      누구나 한 번은 저 강을 건너야 한다

 

      나 또한 다를 바 없어

      곧 바람 멎고 불 꺼지리라

      꿈속의 한평생을

      탐하고 성내면서

      너다 나다 시비만을 일삼는가. 1989

 

-텅빈충만 - (53) 예절과 신의가 무너져간다...............P351~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