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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충만 - (48) 우리 인성이 변해간다

나무향(그린) 2017. 7. 27. 06:58

텅빈충만 - (48) 우리 인성이 변해간다

 

인물을 주로 다루는 사진작가 한 분이 찾아와 이런 말을 남기고 간 일이 있다. 그는 대학에서 사진에 대해 강의하는 교수이기도 한데, 그때 말이 "한국인의 얼굴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문득 어떤 영감의 심지에 불이 켜지는 것 같았다. 그날은 줄곧 사람의 얼굴에 대해서 생각을 이어갔다.

 

 그가 말한 한국인의 얼굴이란, 어질고 순박하고 후덕하고 조금은 어리숙해 뵈는 전통적인 우리 얼굴을 지적한 듯 싶었다. 도시에서는 이제 그런 얼굴을 찾아보기가 어려워 시골과 절을 찾아다닌다고 했다. 일부 시골 노인과 노스님들한테서 그런 얼굴을 찾을 수 있다면서, 사진작가의 의무감에서 기록해두고 싶다는 것이었다.

 

 얼굴이란 무엇인가. 음운상으로는 어디서 유래된 말인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사람의 얼굴이란 바로 그 사람의 '얼의 꼴' 이 아니겠는가 싶다. 그 사람의 생각과 말씨와 생활습관과 식생활과 행동양식이 그대로 드러난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겉을 보면 속을 짐작할 수 있다는 말도 여기에 연유한 것이다.

 

 요즘 커가는 청소년들의 얼굴을 보면 다들 희멀쑥하게 잘생겼고 영양상태도 좋고 활발한데, 어딘지 이기적이고 기백이 약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어지간한 어려움에 부딪치면 그걸 참고 견뎌내는 인내와 의지력이 박약하다. 지금 4,50대의 청소년 시절 모습과 비교해볼 수 있다면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생활 환경의 변화에 따라 사람의 얼굴이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무엇이나 영원히 고정된 것은 없기 때문에 새롭게 피어날 수 있어야 한다. 거듭거듭 형성되어가면서 온전한 사람의 직분을 할 수 있다면 바람직한 일이다.

 

 

 변해가는 것은 우리들 얼굴만이 아니다. 우리들의 인성도 또한 많이 바뀌어가고 있다. 농경사회에서 지녔던 단순하고 소박하고 후덕했던 한국인의 인성이 요즘처럼 격동하는 산업사회에서는 그대로 지속되기가 어렵다.

 

 한때 이 나라를 통치하던 막강한 권력자들이 사라져가는 퇴장의 모습과 그에 대한 국민적인 반응을 두고 생각할 때, 우리가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자유당 시절 이승만 대통령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국민의 저항에 못 이겨 하야를 선언하고 이화장으로 물러가던 날, 순진하고 소박한 많은 국민들은 눈물을 지으면서 배웅했다고 한다. 독선적이고 고집스럽던 노인, 정적을 가차없이 제거하면서 장기집권을 꾀하던 '독재자'가 퇴장하는데 눈물로써 보내던 순진한 국민 감정이다.

 

 쿠데타로 집권하여 18년 동안 국사 독재와 유신 독재로 많은 사람을 괴롭히면서 국민의 원성을 샀던 박정희 대통령이 부하의 총탄에 저격당해 권좌에서 사라져갈 때, 우리 국민의 대다수는 착잡하고 안됐다는 그런 심정이었다. 반체제 인사들까지도 잘됐다는 말을 차마 입에 담지 못했다.

 

 최근 자신의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뒤 온갖 비리와 부정이 낱낱이 드러나 온 국민의 분노와 규탄에 못 이겨 자신이 살던 집과 전 재산을 내놓고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총총히 사라져간 전두환 전 대통령.

 

 새삼스레 여론조사를 인용할 것도 없이 이분에 대한 국민적인 감정은 일찍이 볼 수 없을 만큼 냉혹하다. 어질고 순박하고 후덕하기만 하던 우리 국민의 감정이 어째서 이분에 대해서만은 그리도 야박하게 드러나는 것일까.

 

 묻지 않아도 우리는 알 수 있다. 집권 출발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살상과 희생이 따랐다. 8년 동안 우리를 깜짝깜짝 놀라게 한 대형 사건과 사고들이 뒤를 이었고, 너무 많은 희생자와 피해자를 만들어냈다. 그분 자신의 표현대로 인과응보, 자신이 뿌린 씨앗을 열매를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가 거두게 된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몫의 삶을 살 줄 알아야 하는데, 남의 몫을 넘겨다보거나 가로채면 자신의 삶마저 잃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제대로 다스리려면 자신과 집안부터 다스릴 줄 알아야 하고, 세상을 이끌어가려면 항상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설사 지구가 잠든 순간에라도 지도자는 잠들지 말고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 국민의 인성이 많이 바뀌어버린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우리 자신도 모르게 우리들의 성격이 일반적으로 과격해졌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들이 얼마나 거칠어졌는지 알 수 없다. 오랜만에 외국생활에서 돌아온 교포들이 한결같이 말하고 있듯이, 우리가 쓰는 말들이 너무 거칠고 살벌하다고 한다.

 

 언어란 그 사회의 공기 같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 공기가 맑으면 우리들의 정신상태가 그만큼 건전한 것이고, 그 공기가 탁하다면 우리들의 내면이 그만큼 얼룩져 있다는 뜻이다.

 

 며칠 전 국회 광주특위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나온 왕년의 운동권 학생이 '적' '투쟁' '작전' '퇴각'이란 군사 용어를 거침없이 쓰는 것을 보고, 우리가 그동안 소위 군사문화의 영향을 얼마나 많이 받아왔는가를 되돌아보게 됐다.

 

 정치권의 표현을 빌린다면, 27년에 걸친 군부 독재의 영향으로 우리들의 심성이 그만큼 거칠어지고 조급해지고 과격해졌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다수 국민의 걱정을 불러일으키는 과격 시위나 점거농성, 그리고 학내 폭력도 따지고 보면 군부 독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에서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국민은 그동안의 온갖 시련을 통해 강해질 만큼 강해졌다. 이제는 보다 대범하고 너그러워질 수 있어야 한다. 대범과 너그러움은 강자가 지니는 덕성이다. 외치는 쪽이나 막는 쪽이나 인간의 말로 할 것이지, 폭력은 쓰지 말아야 한다. 세계 시민 앞에 국가적인 체면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피해자의 한 맺힌 입장에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일지라도, 언젠가는 맺힌 마음을 풀고 우리 모두가 착하고 어질게 살아야 할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한 생각 돌이킬 줄도 알아야 한다. 묵은 마음을 돌이켜야 새 마음이 열린다.

 

 <진리의 말씀>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이 세상에서 원한은 원한에 의해서는 결코 풀어지지 않는다. 그 원한을 버릴 때에만 풀리나니, 그것은 변치 않을 영원한 진리다." 1988

 

-텅빈충만 - (48) 우리 인성이 변해간다............P326~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