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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충만 - (46) 언론과 정치

나무향(그린) 2017. 7. 25. 06:10

텅빈충만 - (46) 언론과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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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의 소리>가 다시 복간된다고 하니 실로 감회가 무량하다. 편집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씨알의 소리>에 참여했던 그 어려웠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이 땅의 얼룩진 언론사를 보는 것 같아 착잡하고 씁쓸한 감회가 앞선다.

 

 여러분이 겪어서 익히 알고 있겠지만, <씨알의 소리>에 글을 쓰기가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였다. 글은 필자의 생각과 뜻을 전하기 위해 쓰는 것인데, 이 생각과 뜻을 제대로 전할 수 없이 번번이 깍일 때마다 분노와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어떻게 하면 당국의 검열에 깍이지 않고 글을 살릴 수 있을 것인가를 고심하다 보면, 글쓰는 사람의 자존심에 까지 이르지 않을 수 없었다. 깍이건 말건 하고 싶은 소리나 하고 보자고 나서면 실린 글보다는 깍인 글이 훨씬 많아, 문맥은 고사하고 문장 자체가 전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니 <씨알의 소리>에 글을 쓰기가 얼마나 어렵고 자존심 상하는 일인지 알 만하지 않은가. 그래서 함 선생님께서도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말을 하는 사람은 한 마디 말을 하기 전에 천 마디 말을 제속에서 먼저 버려야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은 한 줄 글을 쓰자면 백 줄을 제 손으로 우선 깍아버리지 않으면 안 될 현실이다…."

 

 1970년대까지는 이렇게 해서라도 <씨알의 소리>는 그 명맥을 이어왔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와서 정권 당사자들은 아예 잡지 자체를 폐간시키고 말았다. 방송과 신문을 통폐합이란 이름 아래 목을 조르고, 읽을 만한 잡지도 더 나올 수 없도록 짓밟아버린 것이다. 실로 무자비하고 무지막지한 군사 깡패들의 소행이 아닐 수 없다.

 

 정치가 무엇이고 언론이 무엇인지, 정치와 언론의 상관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그 가갸거겨도 모르는 무지막지한 무리들이 폭력으로 이 나라를 다스려왔으니, 무고한 백성들이 겪은 괴로움이며 나라 꼴이 어떻게 되었겠는가.

 

 

2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입을 막아놓고서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단 말인가. 시정의 폭력배들이나 함 직한 우격다짐으로 나라를 다스리려고 했으니 그 끝은 뻔하지 않은가.

 

 양식을 지닌 언론이 없으니 사이비 언론이 정권의 북장단을 치면서 갖은 추태를 연출해온 것이 또한 이 땅의 현대 언론사다. 제도권의 신문이나 방송의 보도보다는 흘러다니는 이른바 '유비통신'에 귀를 기울이던 것이 한때 이 땅의 현실이었다.

 

 정권 당사자들이 뒤가 켕기고 자기네 범죄 사실이 드러날 때는 모두가 '유언비어'로 몰아붙였던 것이 또한 이 근래의 정석이었다. 제도언론에서는 전혀 다루어짐이 없이 민간에 흘러다니던 그 '유언비어'의 대부분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대로가 사실이요 진실이요 현실임을 우리는 번번히 겪어왔다.

 

 무릇 유언비어란 언론이 제 기능을 하는 사회에서는 나올 소지가 없다. 인류 사회에 있어 천부의 권리인 보고 듣고 알리는 일을 억지로 가로막기 떄문에, 그 힘이 엉뚱한 통로로 새어 흐른다. 우주의 신비는 살아서 움직임이다. 이 살아서 움직이는 힘을 무엇으로 막는단 말인가. 어리석고 부질없는 한때의 착각이다.

 

 

3

 칼자루를 쥐고 다스리는 쪽에서 보면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면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언론이 못마땅하고 귀찮게 생각될지 모른다. 그러나 어짜피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어 공동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면, 공동체의 의견이 서로에게 소통되고 존중되어야 그 공동체가 병들지 않는다.

 

 거두절미하고, 만약 1980년대에 들어서 신문이나 방송·잡지 등 언론이 활성화되어 제구실을 했다면,이른바 제 5공화국이 전두환 정권이 이처럼 부패하고 타락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언론의 말살은 결과적으로 정권의 부패와 말살로 이어진 것이다.

 

 제도언론 속에서 북장단에 맞춰 놀아난 정치의 결과는 무엇인가. 결국은 국민과 나라의 희생이며 정권의 종말을 가져오지 않았는가.

 

 국민의 입과 눈을 강제로 가려놓고 어떻게 정의사회를 구현하고 복지사회를 건설하며 희망찬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단 말인가. 그야말로 웃기는 수작이다.

 

 순진한 백성들을 우롱하는 그럴듯한 구호를 내걸고 그 뒤에서 갖은 불의와 부정과 비리를 자행한 제5공화국은, 남의 나라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의 삶의 실상이란 점이 우리를 더욱 분하게 하고 착잡하게 만들고 있다.

 

 언론을 교살한 정치가 어떤 정치인지, 그 결과가 무엇을 가져오는 것인지를 역대 정권에서뿐 아니라 세계 정치사에서 우리는 역력히 보아오고 있다. 언론이 부재한 사회에서는 정치마저 부재하고 병들고 만다는 역사적인 교훈을 정권을 쥔 사람들은 어째서 그때마다 망각하고 있는지 실로 안타깝고 통탄스럽다.

 

 언론은 그 사회의 공기公器이고 또한 공기空氣와 같다. 언론이 공기公器이기 때문에 양식이 전제되어야 하고 책임이 따른다. 언론은 또한 그 사회의 공기空氣와 같기 때문에 그것이 흐리면 숨이 답답하고, 결핍되면 그 사회 전체가 질식하게 된다.

 

 의무를 등지거나 무책임한 언론의 횡포는 단연 배격하고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회의 공적公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식을 지니고 그 의무와 책임을 지고 있는 언론은 제 기능을 다 할 수 있도록 국민이 지원하고 정치가 가해를 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것이 건전한 언론이고 사이비인지는 정치 권력에서 상관 할 것이 아니라 독자와 청취자(국민)의 양식이 판단할 것이다. 왜냐하면 독자와 청취자가 곧 현실적인 이해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열린 사회란 밖으로 통상이 확대되고 여행이 자유롭게 된 것만으로는 그렇게 부를 수 없다. 무엇보다도 말길과 듣는 길이 열려 서로 사이에 오해와 불신이 사라지고 이해와 믿음과 협력으로 다져진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런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 정치의 기능이고, 또한 그렇게 되도록 살피고 거드는 것이 언론의 기능일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막힌 사회를 청산하고 활짝 열린 사회에서 마음놓고 살아봤으면 좋겠다. 1988

 

-텅빈충만 - (46) 언론과 정치............P316~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