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빈충만 - (19) 인간과 자연
5
그럼, 자연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그냥 있는 땅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걸친 삶의 터전이다.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이, 우리 할머니의 할머니들이 아득한 그 옛적부터 삶을 이루어온 땅, 우리들의 육친과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들의 피와 살과 땀이 녹아든 흙, 수많은 영혼들이 잠들어 쉬고 있는 성스러운 대지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땅이 돈벌이의 도구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영토 확장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된다. 땅은 그 땅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꾸고 지킬 뿐이다.
1855년 미국의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가 현재의 워싱턴 주에 해당하는 땅을, 그곳에 살던 인디언 스와미족의 추장 시아틀에게 미국 정부에 팔라고 강요했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시아틀 추장이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속에 이런 구절이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하늘을, 땅의 체온과 사고 팔 수 있습니까? 그와 같은 생각이 우리들에게는 매우 생소합니다.
더욱이 우리는 공기의 신선함과 물의 거품조차 소유하지 않습니다.
이 땅의 모든 구석구석은 나의 백성들에게는 신성한 것입니다.
저 빛나는 솔숲이며 모래톱이 있는 해변이며 어둠침침한 숲 속의 안개며 노래하는 곤충들이 모두 내 백성들의 기억과 경험 안에서 성스럽습니다.
백인들이 우리의 사는 방법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한 조각의 땅은 그 곁에 있는 땅과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밤중에 와서 그 땅으로부터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약탈해가는 타인이기 때문입니다.
땅은 그들에게 있어서 형제가 아니라 적입니다.
그 땅을 정복한 다음에도 그들은 전진을 계속합니다.
게걸스러운 그들의 식욕으로 그 땅을 먹고 나면 그 뒤에는 오로지 사막만이 남습니다.
내가 만약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다면 하나의 조언을 내놓겠습니다.
짐승들이 없는 곳에서 인간은 무엇이겠습니까?
만약 숲 속의 모든 짐승들이 사라진다면 인간은 커다란 정신적인 외로움 때문에 죽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짐승들에게 일어난 일들이 인간에게도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은 여러분과 같은 신입니다.
그의 연민은 백인과 인디언들에게 한결같습니다.
이 땅은 그분에게 소중합니다.
그러므로 땅을 해롭게 하는 것은 그분을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백인들 또한 소멸될 것입니다.
당신의 잠자리를 계속해서 오염시키면 당신은 언젠가 당신 자신의 쓰레기 안에서 숨이 막히게 될 것입니다.
들소들이 모두 살육되고 야생마들이 길들여지고 숲 속의 신성한 구석구석들이 인간들의 냄새로 손상된다면, 그것은 삶의 종말이며 죽음의 시작입니다.
마지막 인디언들이 이 땅으로부터 소멸되고 오직 광야를 가로질러 흘러가는 구름의 그림자만 남을 때,
그때에도 이 해변과 숲들은 내 백성들의 정신을 간직하고 있을 것입니다.
당신에게 우리가 살던 땅을 넘겨준 후에 우리가 이 땅을 사랑하듯 사랑하고, 우리가 보살피면서 그것에 대한 기억을 당신 마음속에 간직하시오.
당신이 이 땅을 차지한 후 당신의 모든 힘과 능력과 마음으로써 당신의 자녀를 위해 보호하고 사랑하시오.
인디언 추장의 이편지는 130여 년 전 그 시절의 미국 대통령만이 아니라, 자연을 말할 수 없이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보내온 묵시록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6
인간의 생활은 생태적인 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들 인간의 행위가 곧 자연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그 행위는 다시 결과로써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이런 현상이 인과의 법칙이고 우주 질서다.
이제 우리들은 생활을 바꾸어야 한다. 인간의 철저한 내적 변화만이 오늘의 파국을 극복할 수 있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인간의 맹목적이고 타성적인 생활습관에 일대 변화가 와야 한다.
무엇보다도 잘못된 것은 우리가 현재의 생활방식을 정상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음이다.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는 현재의 생활방식은 역사적으로 볼 때 지극히 근래에 이루어진 일이다.
인간과 자연 사이에는 새로운 관계가 맺어져야 한다. 그것은 정복과 착취의 관계가 아니라 협력과 동반의 관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옛말에 '땅에서 넘어진 자는 땅을 짚고 일어선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쾌적한 자연환경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이루려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의 극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오늘의 문명은 자연이 낳은 이자만으로는 모자라 자연이 쌓아둔 자본까지 갉아먹고 있는 비정한 실정이다. 만신창이가 되어 앓고 있는 오늘날 자연의 신음 소리는, 곧 우리들 자신의 질병이며 신음 소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보다 인간다운 삶을 이루려면, 될 수 있는 한 생활용품을 적게 사용하면서 간소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모든 물건은 지구상에 한정된 자원의 일부이며, 공장에서 기계와 기름과 화학약품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지나친 소비는 반드시 자연의 훼손과 환경의 오염을 가져온다.
신발 한 켤레, 옷 한 벌, 가전제품 한 가지, 가구 한 개를 만들어내는 데에 그만큼 매연과 산업 쓰레기와 더러운 물이 생긴다는 사실을 똑똑히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적게 가질수록 그것은 귀하게 여겨진다. 많이 가질수록 그만큼 인간의 영역이 시든다.
끝으로 우리나라의 선인들이 자연과 어떤 교감을 이루며 살았는지, 한 편의 시조를 통해 알아보기로 한다. 16세기 송순宋純이 읊었다.
십 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 이 글은 1988년 8월 21일부터 9월 8일까지 아카데미하우스와 힐튼호텔에서 '후기 산업시대의 세계 공동체'라는 대주제 아래 열렸던 '서울올림픽 국제핫술회의' 제5분과 '자연의 훼손과 재창조'에서 발표했던 논문의 요지다. -텅빈충만 - (19) 인간과 자연-5 · 6 ...p136~140
'▒▒▒마음의산책 ▒ > 법정스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텅빈충만 - (21) 분수 지키기 (0) | 2014.12.03 |
---|---|
텅빈충만 - (20) 흐린 업 맑은 업 (0) | 2014.12.02 |
텅빈충만 - (19) 인간과 자연-2 · 3 · 4 (0) | 2014.11.29 |
텅빈충만 - (19) 인간과 자연-1 (0) | 2014.11.28 |
텅빈충만 - (18) 눈이 번쩍 뜨인 차 (0) | 2014.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