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끼리 죽이고 죽는 인연
라자그리하에 장사꾼 형제가 살고 있었다. 형은 어떤 부잣집 딸이 마음에 들어 아내로 맞으려고 했으나, 결혼하기에는 아직 나이가 어려 약혼만 해 놓았다. 그는 다른 상인들과 함께 장사하기 위해 먼 나라로 떠난 후 여러 해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약혼한 집 아버지는 과년한 딸을 두고 고심하던 끝에 그 상인의 아우에게 말했다.
“자네 형은 한번 떠나더니 끝내 아무 소식이 없네. 아마 그 쪽에서 장가라도 간 모양이야. 그러니 자네가 내 딸을 맞아들이도록 하게.”
아우는 대답했다.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우리 형님이 살아 계시는데 제가 어떻게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딸의 아버지는 거듭 권했지만, 아우의 굳은 뜻을 돌이킬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단념하지 않고 계책을 하나 짜냈다. 거짓으로 편지를 쓴 후 저쪽에 가 있는 상인들에게 부탁해, 그 형이 죽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이런 영문을 모른 아우는 형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몹시 슬퍼했다. 딸의 아버지는 다시 그 아우를 찾아가 말했다.
“자네 형이 죽었으니 내 딸을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한 번 혼약한 사이라 다른 데로 보낼 수도 없네. 이제는 자네가 형이 한 언약을 대신 치러야 하네.”
아우는 하는 수 없이 그 집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얼마 후 아내는 임신을 했다. 이 무렵, 그 형이 돌아왔다. 아우는 형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형을 대할 면목이 없어 슈라바스티로 떠나 버렸다. 그가 떠나간 후 그 아내의 친구들은 그녀의 배를 만져 낙태를 시켰다.
집을 떠나온 아우는 여기저기 헤매 다니다가 부처님을 뵙고 출가하기를 간청했다. 부처님은 그를 허락했다. 그는 사문의 이름을 우바사라고 했다. 우바사는 계율을 굳게 지키고 부지런히 정진해 곧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그래서 신통력이 생기고 온갖 지혜를 두루 갖추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형은 아우가 이미 자신의 약혼녀와 결혼한 사실을 알고 질투와 분노로 치를 떨었다. 그리고 그의 분노는 달아난 아우를 찾아내어 꼭 죽이고야 말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는 아우가 슈라바스티로 가더라는 말을 듣고 더욱 분노가 치밀어 하수인을 한 사람 구했다. 그리고 “내 아우의 머리를 베어 오면 상금으로 5백 냥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형은 그 하수인을 데리고 슈라바스티로 향했다. 며칠 후, 그들은 아우가 나무 아래 단정히 앉아 좌선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 모습을 본 하수인은 갑자기 자비심이 우러나왔다.
‘내가 어떻게 저 스님을 죽이겠는가.’
그러나 5백 냥의 상금이 눈에 어른거렸다. 그래서 활을 당겨 좌선하고 있는 비구를 향해 쏘았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화살은 곁에 있던 그 형에게 박히고 말았다. 형은 분하여 괴로워하다가 숨을 거뒀다.
형은 분한 마음을 지닌 채 죽었기 때문에 독사의 몸을 받았다. 독사는 독한 마음이 풀리지 않아 우바사의 방 지게문 밑에 숨었다. 틈을 엿보아 우바사를 해치려고 했지만, 지게문을 여닫을 때 치여 죽고 말았다.
죽고 나서도 모진 마음을 고치지 않았기에 그 업의 힘에 따라 조그만 독벌레가 되었다. 독벌레는 우바사의 방 천장을 의지해 살았다. 그러다가 그가 앉아 좌선하고 있을 때를 틈타 그 머리에 떨어져, 모진 독기로 결국 우바사 비구를 죽이고 말았다. <현우경> 우바사형소살품優婆斯兄所殺品
이 인연 설화는 더 계속되지만, 뻔한 결말이라 이쯤에서 중단했다. 어찌해서 친형제끼리 죽이게 되는가를 정상적인 가족 윤리의 자로는 잴 수가 없다. 어디 형제 사이뿐인가. 부자간 에도 그런 경우가 있고, 처음 만났을 때는 정다웠던 부부 사이도 검은 업의 바람이 불어 닥치면 마음대로 상처를 입힌다.
이 인연 설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번 모질게 맺힌 마음은 쉬 풀리지 않아 윤회의 괴로움을 되풀이하고 있다. 크게 뉘우쳐 참회하지 않고는 풀릴 기약이 없다. 수행자들의 일상에 참회와 발원이 따르는 것도 이런 뜻에서일 것이다.
<법구경> 제5게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이 세상에서 원한은 원한에 의해서는 결코 풀리지 않는다. 그 원한을 버릴 때만 풀리나니, 이것은 변치 않을 영원한 진리다.” <법정 스님 '인연이야기' >.........P 229~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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